문명 6/사회 제도
1. 개요
2. 고대 시대
3. 고전 시대
3.1. 문화 비용 110
3.2. 문화 비용 120
3.3. 문화 비용 175
4. 중세 시대
5. 르네상스 시대
6. 산업 시대
7. 현대 시대
8. 원자 시대
9. 정보화 시대
9.1. 문화 비용 2880
9.2. 문화 비용 3000
9.2.1. 벤처 정치(Venture Politics)
9.2.2. 분배된 주권(Distributed Sovereignty)
9.2.3. 최적화 정책(Optimization Imperative)
9.3. 문화 비용 3100
9.3.1. 근미래 통치(Near Future Governance)
10. 미래 시대
1. 개요
문명 6의 사회 제도는 과학 기술과 같이 테크트리 방식으로 연구를 통해 개방하는 사회 제도표와 이렇게 사회 제도표를 통해 해금되어 선택할 수 있는 정부 체제+정책 카드의 조합으로 분리된다. 과학 기술의 유레카와 마찬가지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영감(inspiration)을 얻어 해당 사회 제도의 진척도가 40% 증가하며, 현재 세계 시대보다 앞선 시대의 사회 제도는 영감을 얻었을 때의 진척도가 30% 증가한다.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G/S)에서 정보 시대에 4개의 사회 제도가 추가되었다. 새로운 시대인 미래 시대가 추가되어 총 9개의 사회 제도가 추가되었다. 기존의 '미래의 사회 제도'는 미래 시대의 마지막 사회 제도로 바뀌었다. 군사 유닛 생산력 카드는 현재 시대의 유닛뿐만 아니라 과거의 유닛에게도 보너스를 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설명은 몰려드는 폭풍 기준으로 하며, 흥망성쇠와 오리지널에서만 해당되는 내용은 뒤에 각각 (R/F)와 (오리지널)을 붙였다.
2. 고대 시대
2.1. 문화 비용 20
2.1.1. 법전 (Code of Laws)
[image] '''법전''' | |
사회에서 허용되거나 허용되지 않는 사항을 속속들이 다루기 위한 대략적인 취지의 성명을 대략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법전'은 중동의 고대 왕국 시절부터 문명의 일부로 존재해 왔습니다. 수메르의 우르남무의 법전(기원전 2100년경)과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60년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법전으로, 부적절한 행실에 대한 통치자의 견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작성된 구전율법(기원전 1330년)은 선민을 위한 종교적, 관습적 규율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을 실질적으로 공식화한 것은 조직과 관련된 모범 사례였으며, 529년에서 534년 사이에 완성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로마법 대전은 모든 분쟁이나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중국의 마지막 제국 법령은 1907개의 규정이 명시된 대청국적조례였습니다. 비록 30회의 개정안을 거치기는 했지만 이 법령은 1644년부터 1912년까지 문명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에 이어 유럽에서 법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5세기의 법령은 도시나 지방 차원의 현지 규정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왕들은 자신의 독단적인 결정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모든 의견을 탐탁해 하지 않았으므로 상당히 시기가 지연되었습니다. 최초의 국가 법전은 17세기에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모습을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봉건제가 사라지고 평등과 국가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법령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인 예로 프로이센 조례(1794년), 나폴레옹 법전(1804년)과 독일민법(1896년)을 들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법전과 독일민법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근대 법전 대부분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법규는 시민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민사법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한 형사법이나 형법전으로 종류됩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지혜가 아니라 권한이 법을 만든다네."''' - 토머스 홉스 "'''최선일 때의 인간은 동물 중 가장 고상하다. 하지만 법과 정의에서 분리된다면, 인간은 최악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후속 사회 제도 | 장인 정신, 외국 무역 |
잠금 해제 | 정부 체제 '''족장제'''(군사정책 1·경제정책 1·외교정책 0·와일드카드 0)가 잠금 해제됩니다. 군사 정책 카드 '''규율''': 야만인을 상대할 때 전투력 +5 군사 정책 카드 '''조사''': 정찰 유닛의 경험치 획득량 2배 경제 정책 카드 '''도시 계획''': 모든 도시에 생산력 +1 경제 정책 카드 '''신왕''': 수도에서 금 +1, 신앙 +1(신학에서 경제 정책 카드 '''경전'''으로 대체됨) |
2.2. 문화 비용 40
2.2.1. 장인 정신 (Craftsmanship)
[image] '''장인 정신''' | |
장인 정신은 간단히 말해 물건을 만들 때 기술을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물건이란 기능성 제품, 장식품이나 쓸모 없는 잡동사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없는 노동자가 즐비했던 관계로 고대의 장인은 노예 신분이든 자유인 신분이든 그 가치는 매우 높았습니다. 아테네에서 장인 정신은 미술 및 문화와 흥미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였는데, 예로 소크라테스는 장인 정신과 관련된 비유를 좋아했으며 자신을 실력 있는 석공의 아들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그리스인들은 노예 신분의 장인을 통해 많은 부를 쌓았고, 한 예로 데모스테네스는 120명의 무두장이, 플루트 제작자와 칼 제작자를 소유했습니다. 기술 있는 노예는 가치가 높았으며 심지어 로마에서는 장인이 직접 자신을 고가의 상품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방직공/양장사, 금속 세공사/판화가, 무두장이/신발 제작자 등을 도시의 작업장에 쌍으로 데려와 높은 품질의 재화를 생산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노예를 제외한 자유 신분을 얻게 된 대부분의 장인들이 길드를 결성하여 자신의 실력과 수준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길드 안에서 명장으로의 승격을 원하는 장인은 먼저 견습생과 기능장의 단계를 거쳐 뛰어난 경지의 실력을 쌓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재화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장인 정신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길드는 프랑스 혁명에 이은 몇십 년에 걸쳐 와해되었습니다. 기업에서는 재화를 더욱 빠르고 저렴하게 제조할 수 있었고 장인 정신은 규격화로 대체되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인 정신을 '숙련된 생산 과정'이 아닌 '수작업 과정'의 의미로 오해하고 있지만, 두 의미는 엄연히 다릅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장인 정신이 따르지 않은 영감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일 뿐."''' - 요하네스 브람스 '''"장인 정신은 상상력 없는 기술이며, 우리에게 고리버들로 만든 소풍 바구니 같이 많은 유용한 물건을 줍니다."''' - 톰 스토파드 |
선행 사회 제도 | 법전 |
후행 사회 제도 | 군사 전통, 국가 노동력 |
영감 조건 | 타일 3개를 개발하십시오.[2] 정확히는 타일 3개에 시설이 개발된 상태여야 한다. 타일 3개를 개발했으나 하나 이상 약탈되었다면 영감을 얻지 못한다. |
효과 | 군사 정책 카드 '''아고게''': 고대/고전 시대 근접/대기병/원거리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봉건제에서 봉건 계약으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소작료''': 건설자 유닛 생산시 생산력 +30% (봉건제에서 농노제로 대체됨) 이집트: 건설자가 고유 시설 '''스핑크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마푸체: 건설자가 고유 시설 '''체마물'''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2.2.2. 외국 무역 (Foreign Trade)
[image] '''외국 무역''' | |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원전 19세기경에는 카파도키아의 카네쉬에 아시리아의 상인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까지 알려진 외국 무역의 최초 사례입니다. 세상이 도시 국가, 공화국, 왕국과 제국으로 나뉘게 되면서, 사람들은 바로 국경 너머에 자신이 원하는 물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전쟁은 불확실하고 위험이 많았으므로 현명한 이들은 원하는 물건을 좀 더 평화로운 형태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즉, 많이 보유한 재화(물건, 서비스 또는 노예 등)를 인접 국가와 교환하는 것이었죠. 시간이 흐르면서 교역로가 형성되었고 이 중 일부는 비단길, 호박의 길, 해변의 길 등과 같이 대륙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수출과 수입은 문명의 발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정부에서는 수출과 수입에 따른 세금으로 국가의 금고를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외국 무역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물자가 부족할 경우 그 가치가 상승했으며 결국에는 세율도 올라갔습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생산, 추출과 외국 무역의 모든 측면을 규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무역에 대한 규제는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중앙 지역의 고대 사회에도 존재했고, 이는 상인이 속일 수 없도록 규격화된 중량과 측량 방식이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귀중한 금속이 국제 통화의 대략적인 형태가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당시 생소한 개념이었던 종이 통화가 발명되어 외국 무역을 좀 더 문명화된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외국 무역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온갖 모형과 가설을 고안했으며, 애덤 스미스의 모형, 리카디언 모형, 헥셔 올린 모형, 중력 모형, 신무역 이론, 리카르도-스라파 무역 이론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형과 이론에는 본질적인 자극제인 '탐욕'이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명은 이러한 기본적인 원리에 따라 형성되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모든 나라는 거래를 통해 살아간다."''' - 애덤 스미스 '''"그게 무역의 긍정적인 면이겠지. 전 세계가 함께 뒤섞이는 것 말이야."''' - 이자벨 호빙 |
선행 사회 제도 | 법전 |
후행 사회 제도 | 초기 제국, 신비주의 |
영감 조건 | 두 번째 대륙을 발견하십시오. |
효과 | 교역로 최대치 +1 유닛 '''상인'''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거래를 통해 다른 문명과 합동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군사 정책 카드 '''해양 산업''': 고대/고전 시대 해상 유닛 생산시 생산력 +100% (탐험에서 강제 징집대, 냉전에서 국제 수역으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대상 숙소''': 각 교역로에서 금 +2 (중상주의에서 삼각무역으로 대체됨) |
2.3. 문화 비용 50
2.3.1. 군사 전통 (Military Tradition)
[image] '''군사 전통''' | |
인간이 화합을 이루며 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원시 시대의 수렵민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몽둥이 만으로는 인접 부족민들의 머리를 박살내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필연적으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적의 머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강타하기 위한 군사 체계가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민병대 즉, 분쟁이 일어났을 때 통치자의 분부를 따랐던 '지원자'를 훈련시키는 것이 군사 체계의 전부였고, 이러한 군사 체계가 처음으로 발달한 곳은 인도였습니다. 기원전 2000년경에 아리아인들이 침략한 이후로 인더스 계곡의 여러 도시 국가는 숙련된 전사단을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시기에는 이집트의 구왕국에서 훈련된 의용군을 구축하여 리비아인, 누비아인, 가나안족과 여러 성가신 부족들에 대적했습니다. 중국 문명에서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나름의 군사 체계가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 형태의 '전업' 군대가 탄생한 곳은 그리스로, 정확하게는 스파르타였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소년이 7세가 되면 병영으로 들어가 고국의 군사 체계에 대한 교육을 주입 받았고, 33세가 되면 병영 생활에서 벗어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었지만 '병역 의무'는 60세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로마가 몰락하자 군사 체계는 전술, 제복, 대열, 심지어는 경례법에 이르는 다양한 각종 관행까지 포괄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이후에 패권을 차지한 유럽의 강대국에서는 집단 폭력의 관행을 더욱 체계화했으며, 극동 일본의 무사도는 일본의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화약과 석유로 인해 전쟁이 영광스런 모험보다는 살육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모든 국가는 저마다의 군사 체계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용맹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본인만이 아는 것이다."''' - 데이비드 핵워스 대령 '''"군사 지식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지만, 병사들이 맹종적으로 규칙을 고수하며 전쟁에 임한다면 그들은 실패할 것이다."''' - 율리시스 S. 그랜트 |
선행 사회 제도 | 장인 정신 |
후행 사회 제도 | 군사 훈련 |
영감 조건 | 야만인 기지를 점령하십시오. |
효과 | 측면 공격 및 지원에 의한 전투력 보너스 활성화 군사 정책 카드 '''기동 훈련''': 고대/고전 시대 경기병/중기병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신권에서 기사도로 대체됨) 위인 정책 카드 '''스트라테고스''': 위대한 장군 점수 +2(초토화 작전에서 군사 조직으로 대체됨) |
2.3.2. 신비주의 (Mysticism)
[image] '''신비주의''' | |
'신비주의'라는 용어는 '숨기다'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는 신비주의가 '은밀한' 예식을 지칭했지만, 선험적이거나 신성한 함축이 결여된 만큼 반드시 종교와의 연관성을 의미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에서 전 세계를 장악하자 신비주의는 성서 또는 '성찬식의 그리스도'와 같은 '숨겨진'존재에 대한 '숨겨진' 은유적 해석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이를 다시 왜곡하여 서로 뒤얽힌 신의 세 가지 '신학적' 측면 즉, 성경, 예배, 영혼(비기독교인의 경우 명상)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에서는 유신론적 여부와 상관없이 신비주의적 경험을 인간 변화의 한 단계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신비주의가 팽배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초월성에 목적을 둔 관행, 대화, 글, 제도, 전통 및 경험의 집합으로 간주되는 사상이 가장 이상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의해 비난 받았으며, 또 다른 존재 상태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주술사로 몰린 수많은 신비주의자가 고문을 받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계몽주의를 통해 인간의 한계가 확장되면서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온갖 산물(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탄트라 등)이 뒤엉키게 되었고, 근대 시대의 도래해서는 이러한 신비주의 논쟁을 종식시키는 대신 오히려 기름을 붓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카를 융과 같은 심리학자는 과학의 '정통성'을 종교적인 신비주의와 결합하여 인류가 '실질적인 본질을 깨닫고 진정한 목표를 수립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무의식적 자아로의 발견되지 않은 경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신비주의자들은 이러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의하지 않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부정 신학, 공유할 수 있는 긍정 신학, 유대교의 카블라와 같은 마법이나 성서 신학이든, 아니면 신비주의자가 더 높은 지능을 통해 '융합'이나 '정체성'을 추구하든, 신비주의는 21세기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신비주의는 우연하고 개인적인 상징을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오."''' - 랄프 왈도 에머슨 '''"전 제가 공격적인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하기 때문이죠."''' - 롭 벨 |
선행 사회 제도 | 외국 무역 |
후행 사회 제도 | 신학 |
영감 조건 | 종교관 창시 |
효과 | 사절 +1 세계 불가사의 '''오라클''' 건설 가능 위인 정책 카드 '''계시''': 위대한 선지자 점수 +2(인본주의에서 삭제됨) 위인 정책 카드 '''영감''': 위대한 과학자 점수 +2(핵 프로그램에서 노벨상으로 대체됨) |
2.4. 문화 비용 70
2.4.1. 국가 노동력 (State Workforce)
[image] '''국가 노동력''' | |
노동은 호모 사피엔스 시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도구 제작, 복잡한 뇌 구조, 구어와 노동 구성이 필요했으며 이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확실한 요소입니다. 동양적 전제주의에서 칼 비트포겔은 국가에 의해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건설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대규모 관개 프로젝트로 인해 노동의 전문화, 사화 계급의 부상, 조직화된 정부와 문화 계층을 포괄하는 문명이 도래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물론 의용군 부대는 예외이겠지만 기념비적인 공공 사업을 위한 국가적인 노동력을 '징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고대 통치자의 힘과 '관심사'를 보여줄 수 있는 주된 수단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공공 사업은 온갖 형태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에는 20년에 걸쳐 약 십만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으며 중국의 만리장성에는 더 많은 노동자가 수 세대에 걸쳐 징용되었고, 두 공사를 비롯한 여러 사업에 투입된 노동자는 대부분 농부였으며 봉사 세금의 형태로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오히려 노예들은 이러한 대공사에 수천 명을 투입하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 크다고 판단되어 노동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국가 소속 노동자들을 위한 최첨단 조직 기술 분야를 개척하여 로마를 천년 제국으로 만들어 준 인프라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 수로, 대중 목욕탕, 항구, 부두, 등대와 콜로세움 및 키르쿠스 막시무스 등의 경기 및 공연 시설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가에 대한 봉사는 다양한 형태를 취했지만 항상 강제적인 무보수 작업이 수반되었습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부역(corvée)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부역은 제한된 기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극동 지역에서 단일 대규모 사업과 관련하여 통치자의 명령에 따라 매년 특정 일수를 부역에 참여해야 하는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농노 제도는 봉건제 하에서 표준으로 자리잡았으며 소작농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수준만큼 '장원의 군주'를 위해 일해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군주나 가톨릭 교회의 장식용 건물을 건설하는 데 투입되는 일도 포함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산업혁명의 부채 및 임금 노예제가 생겨났습니다. 비록 단체 교섭, 최소 임금, 아동 노동법, 재소자 권리 및 주간 40시간 근무제를 통해 국가 노동은 대부분 혁파되긴 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튼튼한 경제는 튼튼하고 교양 있는 노동자로부터 시작된다."''' - 빌 오웬스 '''"행복하고 적극적인 노동력을 보유하는 것은 수익이 창출되는 경제성을 가진 것만큼 중요하다."''' - 페른 도슈 |
선행 사회 제도 | 장인 정신 |
후행 사회 제도 | 오락과 여가, 정치 철학 |
영감 조건 | 특수지구를 건설. |
효과 | 총독 타이틀 +1 특수지구 '''정부 청사''' 건설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징집''': 내 각 유닛의 유지비로 소모되는 금 -1 경제 정책 카드 '''강제 노역''': 고대/고전 시대 불가사의 생산 시 생산력 +15%(신권에서 고딕 건축으로 대체됨) |
2.4.2. 초기 제국 (Early Empire)
[image] '''초기 제국''' | |
국가의 자연적인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변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강대해진 한 국가가 인접 국가를 정복하여 '제국'을 형성하는 것, 정복하는 국가의 수가 늘어날수록 제국은 강대해지고, 제국은 계속해서 인접 국가들을 정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런 역동성은 줄어들고 제국의 확장은 중단됩니다. 간혹 더욱 강력한 국가와 맞닥뜨리는 것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원인은 제국이 부패하거나 효율성을 잃고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정복 전쟁을 수행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제국의 확장은 통신과 운송 분야의 기술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특정 시점이 되면 제국이 약화되어 여러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고, 이러한 과정이 다시 순환되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제국'은 기원전 24세기경에 메소포타미아의 사르곤이 세운 아카드였으며, 기원전 17세기에는 바빌론의 함무라비가 이러한 업적을 이었습니다. 기원전 15세기에는 토트메스 3세가 다스리는 이집트의 신왕국이 제국의 기준이 되었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머나먼 중국에서 상 왕조가 일어났으며 곧 이어 400년 후에는 주 왕조가 제국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주 왕조는 550년 후인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의해 몰락하였고, 로마 제국과 견줄 수 있는 문명 최초의 제국은 신아시리아 제국이었으며 뒤이어 메디아 제국과 바빌로니아가 그리고 페르시아와 마케도니아(잠깐이었지만)가 패권을 차지하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기준을 확립한 국가는 로마였습니다. 뛰어난 조직화 능력, 공학적 인프라, 혁신적인 군대, 문화적 유연성과 경제적 영향력을 등에 업은 로마인들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이고 가장 영향력 높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실제로 라틴어인 '임페리움'은 이후로 우마이야, 오스만, 스페인, 영국, 심지어는 미국 등을 지칭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또한 각 제국은 차례차례 "제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기 위한 '문명화의 임무'가 제국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로마인 키케로의 주장을 수용했습니다. 단, 세계가 문명화를 원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과거 제국들의 흥망을 되돌아보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제국은 에어컨 같은 사치품으로 인해 몰락했어. 에어컨 가동을 위해 창문을 닫아 놓으니, 야만인이 쳐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 -개리슨 케일러 |
선행 사회 제도 | 외국 무역 |
후행 사회 제도 | 정치 철학, 드라마와 시 |
영감 조건 | 문명의 인구를 6까지 성장시킴. |
효과 | 총독 타이틀 +1 다른 문명의 유닛이 국경을 통과할 수 없음 거래를 통해 다른 문명에게 국경을 개방할 수 있음 전쟁 명분 '''징벌 전쟁''' 군사 정책 카드 '''리미타네이''': 유닛이 주둔한 도시에서 충성심 +2 경제 정책 카드 '''식민지화''': 개척자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초토화 작전에서 토지 측량사와 함께 공용징수로 대체) 경제 정책 카드 '''토지 측량사''': 타일 구매 비용 -20% 페르시아 건설자가 고유 시설 '''파이리다에자'''를 건설 가능 |
도시국가는 게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의 기술과 문화를 따라가기에, 누군가 이 사회제도를 연구했다면 도시국가의 영토 역시 통과할 수 없다. 도시국가의 영토를 통과하려면 종주국이 되거나, 도시국가에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둘 다가 아님에도 도시국가의 영토를 통과하려면 현대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연구해서 외교 슬롯에 '포함 외교'를 넣어야 한다.
3. 고전 시대
3.1. 문화 비용 110
3.1.1. 오락과 여가 (Games and Recreation)
[image] '''오락과 여가''' | |
오락은 인간 조건의 핵심적인 요소로, 실제로 여가는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필수 요소로 간주됩니다. 오락의 '추구'는 단체나 개인, 능동적이거나 수동적, 정형 또는 자유, 유해 또는 무해, 사적 또는 공적 형태일 수 있습니다. 오락에 소비되는 여가 시간은 문화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인류학자들은 원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선진'문명의 구성원보다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쇼숀족과 같은 부족의 구성원은 항상 뭔가를 만들고 기도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데 모든 시간을 투자했던 유럽인 침입자들의 관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을렀습니다. 초기의 각 문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가를 즐겼습니다. 놀이와 스포츠의 형식을 띠는 여가로는 전쟁, 사냥, 종교 예식이나 여러 쓸모 없는 활동의 흔적을 자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플라톤은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 탐구와 경험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가가 개인과 사회 모두에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는 여가는 사치로 여겨졌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했고 교회에서는 대부분의 여가를 비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가를 즐겼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부유층에게는 놀이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며, 여러 무기력한 이들은 '예술적 취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오락과 여가 생활이 주류로 올라서게 된 계기는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산업화된 서양의 연간 '노동' 시간은 1840년 부터 현재까지 3,000시간에서 1,800시간으로 감축되었고, 노동자와 노동자 조합은 주별 근무 시간 단축, 유급 휴가, 주말 휴일과 기타 갖은 혜택을 요구했고 이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의 궁극적인 목적은 남는 수입과 시간을 오락과 여가에 소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 빵이라면, 여가는 근접한 2위일세."''' - 에드워드 벨라미 '''"여가를 위해 시간을 낼 줄 모르는 사람은 조만간 병마에게 시간을 빼앗길 것이다."''' - 존 워너메이커 |
선행 사회 제도 | 국가 노동력 |
후행 사회 제도 | 군사 훈련, 방어술 |
영감 조건 | 건축 기술을 연구 |
효과 | 특수지구 '''유흥단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유흥단지의 건물 '''원형 경기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불가사의 '''콜로세움'''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집단 주택''': 2개 이상의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서 주거공간 +1 (중세 시장에서 메디나 지구로 대체됨) 브라질: 유흥단지 특수지구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거리 카니발'''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아즈텍: 원형 경기장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틀라츠틀리'''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
3.1.2. 정치 철학 (Political philosophy)
[image] '''정치 철학''' | |
정치 철학은 가장 기본적으로 정부 구성의 개념 즉, 자유, 정의, 법 및 기타 문명화된 허구에 따른 의미, 정부가 취해야 하는 형식,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시민의 최소 권리와 책임에 초점을 둡니다. 혹자가 상상하는 것처럼 정치 철학가들이 동의하는 주제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정치적'이란 용어의 의미 자체가 가장 논란이 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치 철학은 '선한 삶'이 어떻게 구성되는 가라는 의문에 대한 윤리적 논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은둔자를 제외하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동물로 사람이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수반됩니다. 중국의 정치 철학은 그 역사가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 공자의 서적에서 시작됩니다. 서양 정치 철학의 첫 번째 작품은 플라톤의 공화국입니다. 그는 자신이 불의와 불평등이라 여기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며, 이를 찾기 위해 '윤리적'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공상적 정치 체제의 원형이 되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스토아 학파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로마의 정치 철학 실용주의적 성격을 띠는 경향을 지닙니다. 신학적 접근 방식을 수백 년 동안 거친 르네상스 정치 철학은 마침내 실용주의로 되돌아왔으며 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작품을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이어서 루소, 홉스, 로크, 몽테스키외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들이 '사회 계약', 인권, 평등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여러 차례의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전 세계 사람들이 지도자에 반기를 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산업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마르크스, 엥겔스와 레닌 등의 마르크스주의 정치 철학가들이 또 다른 정치 구조인 '급진적 사회주의'를 정부의 '올바른' 형태로 제시하며 혼란을 가중시키며 피로 물든 또 다른 혁명의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옳은지에 대한 정치 철학가 사이의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정치는 가능성, 실현 가능성의 예술이다. 차선책의 예술인 것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 '''"'분열시켜 지배하라'는 좋은 구호다. 하지만 '단결시켜 이끌어라'가 더 나은 구호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선행 사회 제도 | 국가 노동력, 초기 제국 |
후행 사회 제도 | 방어술, 역사 기록 |
영감 조건 | 도시 국가 3개를 만남. |
효과 | 정부 체제 '''고전 공화제''' : 군사 0, 경제 2, 외교 1, 와일드카드 1 정부 체제 '''과두제''' : 군사 1, 경제 1, 외교 1, 와일드카드 1 정부 체제 '''전제정치''' : 군사 2, 경제 1, 외교 0, 와일드카드 1 세계 불가사의 '''아파다나''' 건설 가능 외교 정책 카드 '''카리스마 리더''' : 사절 획득을 위한 턴당 우호도 점수 +2 (전체주의에서 포함 외교로 대체됨) 외교 정책 카드 '''외교 연합''' : 각 도시 국가에 처음으로 보낸 사절은 2명으로 취급됨 |
3.1.3. 드라마와 시 (Drama and Poetry)
[image] '''드라마와 시''' | |
연극의 흥미로움이나 시의 즐거움을 자의로 거부한 인류 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어쨌든 고지식한 청교도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비슷비슷한 연극은 원시 문화 대부분의 의식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식은 확실히 극적이었지만 일반적인 극장을 떠올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극장 연극에는 노래나 서술 형식의 글인 '시'가 필요하고, 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생겨났습니다. 시 자체는 문학보다 앞서 나갔으며 그 기원은 적어도 호머와 메소포타미아의 구비서사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연극이 '예술' 형태로 자리잡게 된 곳은 기원전 6세기 경의 아테네였습니다. 주신제(酒神祭) 기간에는 합창단에서 그리스 신화의 여러 장면에 대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정 시점이 되면 테스피스라는 디오니소스의 사제가 합창단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테스피스는 기원전 534년에 아테네에서 열린 연극 경연의 최초 우승자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연 대회는 그리스 전역의 축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사가 되었으며, 지금은 정형화되었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비극과 희극 형식이 만들어 졌고, 이어서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래스가 연극의 가능성을 더욱 광범위하게 넓혀갔습니다. 에우리피데스는 좀 더 복잡한 구성을 도입했고 성격 묘사는 좀 더 중심적인 형태로 변했으며 등장인물 간의 상호작용이 드라마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한편 시는 기억을 위한 방편으로 진화했으며 역사, 신화, 법, 계보, 도덕률을 비롯한 문명의 중요한 요소가 구두로 전해졌으며, 문자가 발명되고 나서야 인류가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록된 베다(기원전 1700년경)와 오디세이(기원전 800년경) 등의 고대 작품은 기억력과 구두 형식의 전파를 돕기 위해 시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시'는 히아레틱으로 작성된 '난파선원 이야기'로, 기원전 4500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설형 문자'로 작성된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기 시절부터 연극과 시는 서양과 동양의 문명에서 수차례의 진화를 거쳤지만 지금까지도 동서양을 불문한 중요한 문화 지표입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시인들이 치즈 관련 주제에 대해서는 신비하게 침묵하고 있다."''' - G. K. 체스터튼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배우라네."'''[3] 희곡 뜻대로 하세요 2막 7장 중에서. |
선행 사회 제도 | 초기 제국 |
후행 사회 제도 | 역사 기록, 신학 |
영감 조건 | 불가사의 하나를 건설하십시오. |
효과 | 특수지구 '''극장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 극장가 특수지구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아크로폴리스'''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특수지구 극장가의 건물 '''원형 극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마오리: 원형 극장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마라에'''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위인 정책 카드 '''문학적 전통''': 위대한 작가 점수 +2 |
3.2. 문화 비용 120
3.2.1. 군사 훈련 (Military Training)
[image] '''군사 훈련''' | |
십대들이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제식 훈련을 시키거나 서로를 찌르지 않도록 창을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 군사 교육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군사 교육에서는 아무리 터무니 없는 명령일지라도 이에 복종하고 체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남을 죽이되 자신은 죽지 않는 법(이 부분은 비중이 크지 않았음)을 배웠습니다. 스파르타인과 줄루족과 같은 군사 문명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강제 군사 교육이 유아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교육 체계인 아고게(Agoge)는 순종, 인내, 용기와 자제력을 강조했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다른 어떤 사항보다 우선시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테네 교육 체계의 목적은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훈련을 마친 사상가를 배출하는 데 있었고, 전쟁에 대한 훈련 역시 병행되었습니다. 어린 소년들은 유연 체조와 구기 경기를 배운 반면 나이가 많은 소년들은 달리기, 복싱, 레슬링과 같은 상무적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베게티우스의 말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행군 및 체력 훈련을 마친 후에야 무기 훈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영입된 병사는 처음에 나무 방패와 무기를 사용하다가 '글라디우스'라는 검을 받았으며 마지막에는 '필룸'이라는 투창을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받았습니다. 제국군은 훈련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겨울에도 훈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반복 훈련 및 겨루기를 위한 실내 훈련장을 건설했습니다. 머나먼 중국 동부 지역에서는 전문 군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병사가 백성 중에서 차출된 징집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왕조별로 달랐지만 대부분의 예비군은 20세기가 되는 즉시 특정 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군사 훈련에 강제로 투입되었습니다. 봉건제 일본의 사무라이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혹독한 교육과 훈련에 의한 엄격한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비록 훈련 체계는 사무라이 가문의 수만큼이나 다양했지만 몇 가지 교의(정신 수양, 신체 훈련, 기백 그리고 무장 전투/도수 전투 등)는 일본 역사를 통틀어 동일했습니다. 이러한 훈련 체계는 오늘날까지도 이상적으로 간주되어 전 세계의 군사 교육에서 모방되고 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죽이는 것이 본능적이라면, 왜 사람들은 죽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훈련을 받아야 하는가?"''' - 조안 바에즈 '''"싸움에 끼어드는 이들은 코피를 닦아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 존 게이 |
선행 사회 제도 | 군사 전통, 오락과 여가 |
후행 사회 제도 | 용병 |
영감 조건 | 주둔지 건설. |
효과 | 사절 +1 군사 정책 카드 '''숙련도''': 주둔지와 주둔지 건물 생산 시 생산력 +30% 군사 정책 카드 '''습격''': 타일을 약탈/해안 습격할 때 수확량 +100% |
3.2.2. 신학 (Theology)
[image] '''신학''' | |
문명에서 조직적 종교가 나타난 후 신학자가 생겨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신학은 '종교적 사유 및 변증론과 관련된 철학적 규율'로 신과 성스러운 존재, 인간과 '신', 구원, 그리고 종말 신학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신학은 과학처럼 응용적이고 체계적인 성격을 갖추기 위해 불가지론, 무신론, 이신론, 이원론, 일신론, 범심론, 다신론, 물활론 및 토테니즘을 비롯한 지겹도록 무수한 '사상'을 탄생시켰습니다. 비록 모든 종교에 대해 응용이 가능한 것은 확실하지만, 신학은 주로 아브라함의 신앙에 뿌리를 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및 분파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신학'이라는 용어를 신화와 동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즉, 여기에는 일시적인 교육적 중요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이성적 상태에서 정화된다고 생각한것이죠. 신학을 신화와 동일시하는 방식은 지중해 문명 전역에서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잡았지만, 이에 불쾌함을 느낀 기독교인들이 신학을 신에게 죄를 고백하고 이러한 고백을 설교하여 신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공표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하며, 따라서 중세 시대 초기의 신학은 신학의 옹호자들이 신앙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명을 제시하고 이성주의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성명을 해석한 후 '실제'의 세상과 영적 세상이라는 맥락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로 정의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학자들은 자신들을 신비주의로부터 분리하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신학을 진지하게 받아드리도록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중세 시대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는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신학이 궁극의 주제로 자리잡았습니다. '과학의 여왕'으로 명명된 신학은 젋은 남성이 필수로 익혀야 하는 3과목 및 4과목 학과의 최상위 학문이었습니다. 계몽시대에는 신학이 대학교 교과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독일에서 이러한 양상이 고조되었습니다. 신학적 방식이 적절히 이론적이고 과학적인지 여부가 이후에도 계속 해결되지 않은 논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수학 없이는 정확한 계량과 천문학을 할 수 없고 화학 없이는 정확하게 철을 만들 수 없듯이, 신학 없이는 종교에 대한 정확한 사고를 할 수 없습니다.'''" - 존 홀 '''"인류가 고생하는 이유는 신이 재미를 위해 만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 앨런 W. 와츠 |
필요 사회 제도 | 신비주의, 드라마와 시 |
영감 조건 | 종교를 창시하십시오. |
효과 | 사절 +1 특수지구 성지의 건물 '''사원'''을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노르웨이: 사원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목조 교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크메르: 사원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프라사트'''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세계 불가사의 '''마하보디 사원'''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경전''': 성지의 인접 보너스 +100% 아라비아: 대학을 대체하는 고유 건물 '''마드라사'''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4] 대학은 과학 기술 교육에서 가능 |
3.3. 문화 비용 175
3.3.1. 방어술 (Defensive Tactics)
[image] '''방어술''' | |
야만인이 엄습해 왔을 때에는 성벽 뒤에 숨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 외에 가장 먼저 취하게 되는 방어 전략은 무장한 병사들을 최대한 밀집된 형태로 모으고 날카로운 창은 바깥쪽을 향하게 하여 공격 상대의 접근을 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단체 대형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의 수메르인들이었습니다. 밀집된 대열을 갖춘 수메르 보병들은 갑옷(투구, 흉갑, 각반)과 무기(3미터 길이의 창과 중첩이 가능한 둥근 방패)를 착용했습니다. 향후 몇천 년 동안은 방어술에 큰 변화가 없었고, 궁술로 인해 방어구의 중요성만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군사적인 모든 부분이 그렇듯 로마에서는 대부분의 경쟁 국가보다 더 나은 방어술을 개발했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300년경에 조정 가능한 보병 부대를 처음으로 결성하여 대열에 유연함과 지원성을 부여했습니다. 3열로 배치되어 보병 간에 공백을 확보한 보병 부대는 어떠한 위협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 전에는 유능한 척후병(경보병)이 최전선에서 보병 부대의 배치를 엄호했으며, 전투 중에는 기갑부대와 외인부대가 측면을 보호했습니다. 그리고 철두철미한 로마인들은 투척 무기로부터 군대를 보호할 수 있는 귀갑진, 열의 간격을 빠르게 메울 수 있는 톱, 낙오된 진열을 위한 구체, 열세에 처했을 경우 전투를 회피할 수 있는 지구전술 같은 가능한 모든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방어술을 개발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이러한 영리함은 철저히 무시되었으며 단순히 적에게 돌진하여 아군이나 상대방이 항복할 때까지 서로 난도질하는 형태로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바이킹 광전사와 유럽 기사의 전략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군사적 사고가 공격적인 측면에 집중되었고 방어적인 측면은 대부분 무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높은 성벽과 수많은 궁수들은 예외적이었고, 적어도 화약이 발명되어 무분별한 돌진이 위험한 전략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양상이 지속되었습니다. 소형 화기의 비용이 낮아지고 효과는 상승하며 방어 시 별다른 훈련이 요구되지 않게 되면서, 화약이 전장을 지배했습니다. 또한 유일한 실질적인 방어술은 최대한 병사를 산개시키거나 위장을 사용하거나 참호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적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방어이며, 우리가 승리를 쟁취하게 하는 것은 공격이다."''' - 손자 "'''방어는 부유함보다 우월하지."''' - 애덤 스미스 |
선행 사회 제도 | 오락과 여가, 정치 철학 |
후행 사회 제도 | 해군 전통, 봉건제, 공공 행정 |
영감 조건 | 선전포고를 받음.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전쟁 명분 '''재정복 전쟁''' 전쟁 명분 '''보호 전쟁''' 세계 불가사의 '''할리카르나소스 마우솔레스 영묘'''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군사 정책 카드 '''리메스''': 방어 건물 생산 시 생산력 +100%(이데올로기에서 보루와 함께 삭제됨) 군사 정책 카드 '''보루''': 도시 방어 시 전투력 +6, 도시 원거리 전투력 +5 |
3.3.2. 역사 기록 (Recorded History)
[image] '''역사 기록''' | |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또 다른 기본 욕구 중 하나로 보이며, 역사에 대한 기록은 고대 역사 전체에 걸쳐 독립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초기의 간단한 연대표는 그 역사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최초의 묘지와 사원에 새겨진 것 이상의 실질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역사는 중국의 '이십사사'였습니다. 여기에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17세기의 명 시대까지 존재했던 모든 왕조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당나라를 필두로 각 왕조에서는 궁중 기록을 이용하여 앞선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공식 기관을 두었으며 결과적으로는 3,213권의 역사서가 쌓이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서는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여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서양 문명에서는 기원전 450년경에 활동했던 할리카르나소스의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지만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역사에 접근한 인물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투키디데스였습니다. 헤로도토스와 달리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인류의 결정에 따른 결과물로 간주했으며 헤로도토스와 후대의 수많은 기독교 학자들이 주장했던 신의 개입이 아닌 인과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건이 종교의 관점을 통해 해석되고 기록되었습니다. 역사에 대한 세속적인 접근 방식으로 되돌아간 것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었지만, 헤겔 자신조차 과거는 해석이 필요한 기이한 풍토라고 주장했던 아랍의 역사학자 이븐 할둔의 접근 방식을 보완하는 데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계몽주의 역사는 1776년에 발행된 에드워드 기번의 기념비적인 로마제국 쇠망사(총 6권)을 통해 정점을 찍었습니다. 객관성과 1차적 출처의 사용을 강조한 이 작품으로 기번은 최초의 '근대 역사학자'로 추앙되었습니다. 또한 서술형 역사에 대한 강조를 통해 역사적 문서의 기록 연구와 분석을 수행하는 데 집중한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년)에 대한 주장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아날학파와 마르크스 레닌주의적 접근 방식에서 역사를 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려한 시점에는 역사가 더 이상 사실에 대한 설명에서 그치지 않고 문명이 형성된 방식과 원인에 대한 통찰력까지 제시되었습니다. | |
인용구 | '''"나는 삶에서 몇몇 끔찍한 일들을 겪었고, 몇몇은 실제로 일어났다."''' - 마크 트웨인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동의하기로 한 버전입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선행 사회 제도 | 정치 철학, 드라마와 시 |
영감 조건 | 캠퍼스 특수지구를 2개 건설하십시오.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세계 불가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정책 카드 '''자연 철학''': 캠퍼스의 인접 보너스 +100%(이데올로기에서 5개년 계획으로 대체됨) 외교 정책 카드 '''프라에토리움''': 총독이 정착한 도시에서 턴당 충성심 +2(소셜 미디어에서 홍보국으로 대체됨) |
4. 중세 시대
4.1. 문화 비용 220
4.1.1. 해군 전통 (Naval Tradition)
[image] '''해군 전통''' | |
인류는 3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상 전투를 이어왔습니다. 현재까지 기록된 최초의 해상 전투는 기원전 1210년경에 일어났던 히타이트의 수필루리우마가 키프로스의 함대를 무찌르고 이들의 상인 선단을 불태워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해상 분쟁과 주변 해상 수송 무역에 대한 약탈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해안 지역과 섬이 많은 문명은 그렇지 않은 인접 문명에 비해 좀 더 일찍 해상 전투에 돌입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와 카르타고의 놋배(노가 달린 배)가 지중해를 지배했고, 적함은 놋배로 돌진하거나 서로의 갑판 위로 올라갔습니다. 선상 전투는 사실상 땅 위에서의 육탄전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전함이 개발되었지만 최초의 중국 해군은 12세기의 송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구축되었으며, 한편 중세 인도의 촐라 왕조는 당시 지역 최강의 해군력을 보유했었습니다. 유럽의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바이킹,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및 포르투갈 같은 여러 왕국에서는 명한 해군 전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머나먼 지역의 대륙을 '발견'하고 해당 지역의 토착민을 학살한 후 유럽인들이 정착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코그선, 캐러벨선과 카라크선은 놋배를 퇴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광활한 외해의 횡단도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대양 왕국들은 중세 시대가 르네상스로 전환되는 시기에 맞춰 위대한 해상 무역 제국을 건설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이어서 화약이 발명되었고 해상 전투는 완전히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배를 조정하여 적선 측면에 뱃머리를 때려 박은 후 보병이 난간을 통해 돌진했던 시절은 과거의 일이 되었고, 대신 배를 측면으로 돌려서 운 나쁜 적선에 공격을 퍼붓는 방식으로 전투가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이미 강력한 해군 전통을 구축한 국가에 유리한 고지를 안겨 주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훌륭한 해군은 전쟁에 대한 도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평화의 확실한 보증이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군에는 전통과 미래가 있고, 우리는 양쪽 모두 자랑스럽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 알레이 버크 |
선행 사회 제도 | 방어술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사단노선으로 적을 처치. |
효과 | 사절 +1 경제 정책 카드 '''해군 기반시설''': 항만의 인접 보너스 +100%(이데올로기에서 경제동맹으로 대체됨) 위인 정책 카드 '''항해술''': 위대한 제독 점수 +2 |
4.2. 문화 비용 300
4.2.1. 봉건제 (Feudalism)
[image] '''봉건제''' | |||
비록 카롤링거 제국의 분권화가 자극제가 되긴 했지만 봉건 제도가 표면화된 시기는 8세기였습니다. 이 '봉건제'라는 용어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던 사회 구조를 지칭하기 위해 17세기의 역사학자들이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합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재산 증식을 위해 귀족들에게 특정한 토지 권한을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귀족들은 이를 통해 마르텔의 모험을 위한 병력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귀족은 이에 보답하기 위해 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할당된 영토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법적 권리는 세습이 되었고, 영주들은 이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측근들에게 토지를 하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봉건제라 부릅니다. 전형적인 봉건제는 영주, 봉신과 봉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기사들 사이에 상호적인 법적, 군사적 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였습니다. 물론 영지에 묶여 있는 소작농도 존재했지만 영주와 봉신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향후 500년의 세월 동안 얼마 되지 않는 권력과 부는 영주가 총애하는 몇몇 신하에게만 주어졌습니다. 법은 복잡했고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가톨릭 교황은 신이 지상에 내린 대리인으로서 특별한 권한과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귀족뿐만 아니라 주교와 수도원장까지 봉건제에 참여했습니다. 당시의 주교는 가장 강한 영주들과 함께 전장에서 적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국가주의와 절대군주제의 부상과 함께 봉건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1500년경에는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중앙 및 동부 유럽에는 길게는 1850년대까지도 유지되었고, 서양에 의해 강제로 문물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일본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유지되었습니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1891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농노 제도를 혁파할 수 있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민주주의에서는 당신의 투표가 중요하지만, 봉건주의에서는 당신의 백작이 투표합니다.'''" - 모겐스 잘버그 '''"봉건제도의 진전과 함께 철제 갑옷이 발전하여, 마침내 전사가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되었다.'''" - 존 보일 오라일리 | ||
선행 사회 제도 | 방어술 | ||
후행 사회 제도 | 용병, 중세 시장, 길드 | ||
영감 조건 | 농장을 6개 건설 (6개를 유지하고 있어야 달성된다. 그리고 계단식농장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 ||
효과 | 3개 이상의 농장이 서로 인접해 있으면 인접한 각 농장에 식량 +1 군사 정책 카드 '''봉건 계약''' : 고대, 고전, 중세, 르네상스 시대 근접/대기병/원거리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민족주의에서 대육군으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농노제''' : 생산되는 모든 건설자의 건설 횟수 +2(토목 공학에서 공공 사업으로 대체됨) |
4.2.2. 공공 행정 (Civil Service)
[image] '''공공 행정''' | |
'공공 행정'은 '비교적' 오래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용어입니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던 군주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할 수는 없었으므로, 교육을 이수한 공무원으로 구성된 관료 체제를 통해 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인도의 영국 행정부에 의해 처음 회자되기 시작했으며 100년 전 찰스 트레빌리안 경에 의해 대중화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군대 인사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정부를 위해 일하기를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이 마련된 시기였습니다. 공공 행정은 최초로 종이가 발명된 고대 중국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처음으로 중앙집권제를 갖춘 중국 제국을 실현했으며, 따라서 관료가를 필요로 했습니다. 공공 행정 인사는 지방 공무원의 추천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기원전 124년에는 한 무제가 제국 대학교를 설립하여 공무원 희망자에 대한 훈련과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추천보다는 시험을 통한 인사 지명의 빈도가 더욱 높아졌고, 이러한 모든 체제는 측천무후의 재위 시절에 크게 확산되어 송 시대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시험 응시자는 유교의 9대 경전에 대한 암기 능력과 시,서예 능력을 검증받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관료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구에서는 조직 체계가 우수했던 로마인들이 후속 관료 체제를 위한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학식 있는 기사 계급층에서 인물을 선정하여 정부 직책에 앉히는 방식으로 제국 공공 행정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사업적 수완이 있었던 이들은 먼 지방을 관리하고 로마 통치의 약화를 방지하는데 특히 적합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의 재위 시절에는 기사 계급층에서 더 높은 직책을 합당하게 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행정장관('황제의 대리인')에 이어 총독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로마나 외국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총독은 소방대에서 곡물 공급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관할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상세한 체제에는 변화가 있었지만 공공 행정 자체는 크게 변한 점이 없습니다. | |
인용구 | '''"모든 것이 서류와 문서로 이뤄져 있어요. 공무원 조직은 서류,문서, 그리고 불필요한 요식으로 만들어진 요새와 같아요.'''" - 알렉산드르 오스트롭스키 '''"납세자란, 공무원 시험을 보지 않고도 연방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 로널드 레이건 |
선행 사회 제도 | 방어술, 역사 기록 |
후행 사회 제도 | 길드, 신권 |
영감 조건 | 도시 인구를 10까지 성장시킴. |
효과 | '''동맹''' 체결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신하''' : 유닛이 주둔한 도시에 쾌적도 +1(대중 매체에서 선전 활동으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사회적 명성''' : 2회 이상(R/F 3회 이상) 진급한 총독이 정착한 도시에 쾌적도 +1, 주거공간 +1 |
흥망성쇠부터는 군사동맹만, 그것도 2단계만이 시야가 공유된다.
오리지널 시절에는 "특수지구마다 문화 +1"의 효과를 가진 '''능력주의''' 경제 정책 카드가 있었으나 삭제되고, 해당 효과는 황금기 집중 전략 "펜, 붓과 목소리"로 옮겨갔다.
4.3. 문화 비용 340
4.3.1. 용병 (Mercenaries)
[image] '''용병''' | ||
문명의 시작과 함께 인류는 돈을 위해 서로를 죽고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명예, 믿음, 사랑이나 여러 터무니없는 명분보다는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훈련이 부족하거나 훈련을 거부했던 민병대를 보강하거나 측근을 보호하기 위해 용병을 처음으로 고용한 족장이 누군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진나라에서는 전쟁으로 다른 국가를 정복한 이후로 진과 한 왕조는 말을 타고 초원을 누비던 유목민 궁수들을 고용하여 안전을 기했습니다. 크세노폰은 키루스가 기원전 401년에 '10,000'명의 그리스 용병을 고용하여 페르시아의 왕좌를 차지했으며 마케도니아, 카르타고와 로마에서는 '야만인' 용병을 전쟁에 고용했다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용병이 표면화된 것은 중세 시대였습니다. 비잔틴 황제는 고대 로마의 관례에 따라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로 이루어진 외국인 용병을 친위대(용맹무쌍한 와리아기 친위대)로 고용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정복자 윌리엄이 플랑드르의 궁수를 고용하여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영토를 통치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용병단이 운영되었으며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만연한 내란이 진행되는 동안 용병단의 전문적인 군사 인력을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편을 바꾸었고, 또한 무슬림 통치자를 위해 전쟁에 참여한 기독교인은 엘 시드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위 '용병단'은 1360년의 브레티니 조약으로 백년 전쟁이 종식(적어도 9년 동안은 전쟁이 없었음)된 이후 수백 명의 숙련된 군인들이 기존의 삶 그리고 약탈을 이어가기로 선택하면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에는 상비군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으므로 일자리도 넘쳐났습니다. 용병대는 존 호크우드 경, 아르노 드 세르볼라, 로드리고 비얀드란도 및 베르너 폰 우르슬링거와 같은 무자비하고 기상천외한 용병 대장의 지휘 하에 1600년대 초반 전장을 지배하였습니다. 영국 제도와 프랑스에서는 갤로글레이('젊은 외국 전사'라는 뜻)라는 스코틀랜드의 무자비한 용병단이 온갖 영국인들을 학살하며 악명을 떨쳤고, 또한 유명한 스위스 용병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중 일부는 바티칸의 교황 친위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통은 지속됩니다. | ||
인용구 | '''"평화시에는 용병들에게 약탈당하고, 전시에는 적에게 약탈당한다.'''" - 니콜로 마키아벨리 '''"용병으로 얘기하자면 말이야... 뭐 우린 돈과 분쟁이 뒤섞인 곳이면 아무 데나 간다고.'''" - 하워드 테일러 | |
선행 사회 제도 | 군사 훈련, 봉건제 | |
후행 사회 제도 | 탐험 | |
영감 조건 | 지상 유닛을 8기 보유하십시오 | |
효과 | 사절 +1 군사 정책 카드 '''직업 군대''' : 유닛 업그레이드 비용 -50% 경제 정책 카드 '''무역 연합''' : 국제 교역로에서 문화 +1, 과학 +1 (자본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대체됨) 인도네시아는 유닛 프리깃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종''' 생산 가능 (프리깃은 과학 기술 가로돛에서 가능) |
4.3.2. 신권 (Divine Right)
[image] '''신권''' | ||
왕권 신수설은 성경에서 확실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로마서 13장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라고 시작하는 구절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 바울은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뜻에 따라 왕을 없애고 세운다"라는 내용을 명시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다른 시대 몇몇 왕들은 신성한 존재가 자신을 지상으로 보냈거나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했으며, 기독교 유럽 초기에는 메로빙 왕조가 권력을 장악한 이유가 신의 의지였고 결국 메로빙 가문이 축복받은 자들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습니다. 따라서 서기 800년 크리스마스에 교황이 샤를마뉴 대제에게 왕관을 수여했을 때, 이는 권한의 수여가 아니었으며 이미 존재했던 그의 신권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왕권은 잘 훈련된 군대로부터 큰 도움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철학(신학)은 수백 년 동안 왕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예를 들어 1597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영국 왕좌에 오를 때를 대비하여 왕권에 대한 지침서인 바실리콘 도론('왕의 선물'을 의미)을 저술하며, 책에는 "군주국은 최고의 국가이다. 군주국의 왕은 신이 지상으로 보낸 측근일 뿐만 아니라 신의 보좌에도 앉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는 통치자들이 좀 더 세속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통합하기 시작했으며 절대주의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개신교의 확산으로 상황이 급격하게 돌아가며, 가톨릭에서 부여하는 신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나폴레옹이 왕이란 왕은 모두 왕좌에서 밀어내는 과정에서 그나마 조금 남은 교리의 신뢰성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 ||
인용구 | '''"이 왕의 권력에 관한 부분은 다음 신성한 공리로 마무리하겠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러므로 왕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선동이다.'''" - 제임스 1세 '''"잘 들어봐, 이상한 여자가 연못에 누워 칼을 나눠주는 건 정치제도의 기반이 될 수 없어. 단순히 물에 흠뻑 젖은 여자가 칼을 던져줬다고 최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생각하면 안 된다고.'''" - 몬티 파이선 | |
선행 사회 제도 | 신학, 공공 행정 | |
후행 사회 제도 | 개혁 교회 | |
영감 조건 | 사원을 2개 건설하십시오. | |
효과 | 정부 체제 '''군주제''' : 군사 3, 경제 1, 외교 1, 와일드카드 1 세계 불가사의 '''몽생미셸 수도원'''과 '''고토쿠인''' 건설 가능 군사 정책 카드 '''기사도''' : 산업 시대의 경기병/중기병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경제 정책 카드 '''고딕 건축''' : 르네상스,중세,고전,고대 시대 불가사의 건설시 생산력 +15% |
4.4. 문화 비용 420
4.4.1. 중세 시장 (Medival Faires)
[image] '''중세 시장''' | ||
외국 무역의 범위가 확장되고 장인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중세 시대 말기에는 새로운 종류의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유럽 봉건제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시장 도시'는 상설 시장을 보유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영주로부터 부여받았고, 당시 다른 도시와 마을, 심지어 도시 인접 지역에서는 시장을 여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열리면 보부상과 장인은 지정된 장소에 짐을 풀고 소지한 물건을 판매했고, 이후, 공연가, 변호사, 의사, 세관 공무원과 각종 하층민들이 시장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하루나 3일(성인 축제와 연계되는 경우가 많았음)에 걸쳐 진행된 시장은 대부분 교회나 수도원의 교구 내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탐욕('성전에서 환전상들을 쫓아내는 그리스도'에 기인함)이 신성 모독으로 간주되고 에드워드 1세의 재위 시절(1300년경)에 통과된 윈턴 조례에 의해 금지된 영국에서는 예외였습니다. 천막과 점포를 차리고 싶은 상인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으므로 현지의 귀족들은 이러한 시장이 열리도록 독려했습니다. 또한 상인은 왕에게 세금을 상납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왕과 귀족은 사치품 구입을 위한 돈을 얻었고 상인은 수익을 얻었으며 소작농과 주민은 새로운 문물, 생각 및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던 것입니다.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시장의 다수가 왕실의 인가서에 의해 형성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장은 1199년에 들어섰습니다. 또한 교회와 정부 기록에서는 인가서가 없었던 시장에 대한 다수의 문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 '규범' 즉, 관습에 의해 형성된 시장이라 설명합니다. 매우 오래된 시장들, 특히 도심의 시장들 다수는 규범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100년 이상에 걸쳐 지속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몰던(에식스)의 초원에서 열린 시장이 있습니다. 이 시장은 1287년의 문헌에 처음 언급되었지만 이르면 916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
인용구 | '''"반짝이는 모든 것이 다 금은 아니라네, 자네도 종종 들었듯이 말이야.'''" - 윌리엄 셰익스피어 '''"상인에게 속임수를 쓰기 전에는 제대로 된 흥정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아주 정직한 사람들이 있다.'''" - 아나톨 프랑스 | |
선행 사회 제도 | 봉건제 | |
후행 사회 제도 | 탐험, 인본주의 | |
영감 조건 | 교역로를 4개 유지하십시오. | |
효과 | 총독 타이틀 +1 경제 정책 카드 '''미학''' : 극장가의 인접 보너스 +100% (프로 스포츠에서 스포츠 미디어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메디나 지구''' : 3개 이상의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서 주거공간 +2 (선거제도에서 뉴딜 정책으로 대체됨) 외교 정책 카드 '''상인 연합''' : 도시 국가에 파견된 플레이어 사절마다 금 +1 |
4.4.2. 길드 (Guilds)
[image] '''길드''' | ||
전성기였던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 상인과 동직 길드에서는 안정적이고 생산적인 경제를 조성하고 자선 및 사회 개혁을 지원했으며 도로, 학교와 교회의 건축 비용을 후원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가능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드의 보수주의, 배타성, 독점 운영 및 정치 개입은 결국 이들의 수익을 약화시켰으며 길드에서 관계성은 사라지고 와해라는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공예 협회를 혁파하는 법령이 프랑스(1791년), 스페인(1804년), 독일(1859년)과 이탈리아(1864년)에서 통과되었을 무렵에는 길드의 권한이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무역 길드는 이르면 기원전 3세기의 로마와 중국 한나라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세 시대 초기에는 기독교의 종교 단체로 변질되는 경우가 잦았던 대부분의 로마 콜레기아(로마 공예 단체)가 사라졌습니다. 단, 교회 건축에 고용되었던 석수와 유리 세공사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콜레기아는 비잔틴 제국에서 존재했으며 수도의 사회 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900년경에 출간된 유명한 '행정장관의 책'(Book of the Prefect)에서는 비잔티움의 모든 공예 및 무역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집행하는 데 주로 목적이 있었던 정교한 길드 구조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품질, 수량 및 가격에 대한 관리 개념은 10세기에는 이탈리아로, 11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반적으로 중세 길드는 도시나 마을의 정부 단체에서 발행한 인가서나 전매 특허증을 통해 설립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이나 거래에 대한 독점권이 주어졌습니다. 통치자는 십일조를 부과했고 길드에서는 기준과 가격을 확립했으며 결국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소비자는 예외였을 수도 있음). 12세기 말의 기록을 보면 100개가 넘는 길드가 런던과 파리의 각 도시에서 승인되었고, 특정 지역에서는 몇몇 길드의 영향력이 너무도 막대하여 길드 자체가 도시의 정부 기관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독일 스위스와 홀랜드에서 발견된 길드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길드가 부패하고 신기술이 부상하면서 길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 ||
인용구 | '''"모든 남성은 자기 아들이 어떤 유용한 일거리나 직업을 배우게 해야한다. 운수가 급변하는 시대에 그들이 어떤 분명한 대비책이 있도록 말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도적 길드를 계속 체포할 수는 없네. 생각해보게, 종일 해도 끝이 안날 걸세.'''" - 테리 프래쳇 | |
선행 사회 제도 | 봉건제, 공공 행정 | |
후행 사회 제도 | 인본주의, 외교부, 개혁 교회 | |
영감 조건 | 시장을 2개 건설하십시오. |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세계 불가사의 '''치첸 이트사'''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장인''' : 산업구역의 인접 보너스 +100% (계급 투쟁에서 5개년 계획으로 대체됨) 경제 정책 카드 '''타운 헌장''' : 상업 중심지의 인접 보너스 +100% (선거권에서 경제동맹으로 대체됨) 위인 정책 카드 '''보부상''' : 위대한 상인 점수 +2 (자본주의에서 자유방임주의로 대체됨) 콩고는 특수지구 주택가를 대체하는 고유 특수지구 '''음반자'''를 건설 가능 (주택가는 도시화에서 가능) 호주 건설자가 고유 시설 '''아웃백 목장'''을 건설 가능 네덜란드 건설자가 고유 시설 '''간척지'''를 건설 가능 |
5. 르네상스 시대
5.1. 문화 비용 440
5.1.1. 탐험 (Exploration)
[image] '''탐험''' | ||
인류가 한 장소에 처음 정착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 중에는 항상 지평선 너머의 세상을 갈망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 동기가 이윤, 모험, 종교, 필요 또는 호기심을 비롯한 그 무엇이 됐든, 탐험가는 세계와 그 경이로움에 대한 인류의 지식을 넓혀주었고, 탐험 과정에서는 결과야 어찌됐든 먼 지역의 다양한 문화들을 이어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또한 탐험가는 여행 도중에 온갖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은 고대 지중해 전역을 항해하며 새로운 교역품을 찾아 나섰습니다. 유물에서 발견된 주석을 보면 페니키아인들이 심지어 머나먼 영국까지 항해했음을 알 수 있고, 카르타고의 한 노('항해자')는 기원전 500년경에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의 아프리카 연안 지역까지 탐험하였습니다. 부지런한 그리스인들은 북부 유럽을 탐험했으며 심지어는 북극까지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에서는 중앙 아시아로 탐험가를 보내어 국경 서쪽의 성가신 흉노 지역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한참 후에는 중국의 제독 정화가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섬들을 지나 인도를 우회하여 아프리카의 동부 연안으로 이어지는 항해를 완료했습니다. 새로운 땅에는 거래 가치가 있는 새로운 물건과 야만인들로 가득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바이킹은 북대서양을 횡단하여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빈란드를 비롯한 다른 땅을 탐험하고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소위 '대항해 시대'에는 비좁은 땅과 각종 문제에 시달렸던 유럽에서 탐험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나 아시아 중앙 지역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던 만큼 탐험의 기회는 넘쳐났습니다. 이들은 15세기를 기점으로 최초의 무역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무력'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의 디에고 카오와 같은 후발 주자는 콩고까지 도달했으며,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오렐라나는 아마존을, 루이스 클라크 탐험대는 미주리와 컬럼비아 강을 발견했습니다. 1900년에는 극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탐험할 지역이 남아있지도 않았습니다. 쿡과 피어리는 각자 1908년과 1909년에 북극에 도착했다고 주장했으며, 아문센 탐험대는 1911년 12월에 남극에 도착했습니다. | ||
인용구 | '''"우리가 탐험하기를 멈추는 날은 우리가 호기심과 꿈이 없는 침체된 세상에 살기로 약속하는 날입니다.'''" - 닐 디그래스 타이슨 '''"우리는 탐험을 그치지 않을것이다. 처음 시작한 장소로 되돌아와야 비로소 탐험이 끝나는 것이다..'''" - T. S. 엘리엇 | |
선행 사회 제도 | 용병, 중세 시장 |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
영감 조건 | 캐러벨을 2개 생산하십시오. | |
효과 | 목장 시설에서 식량 +1 정부 체제 '''상인 공화제''' : 군사 1, 경제 2, 외교 1, 와일드카드 2 군사 정책 카드 '''강제 징집대''' : 산업 시대 및 그 이전 해상유닛 생산시 생산력 +100% 경제 정책 카드 '''식민지 사령부''' : 수도와 다른 대륙에 위치한 도시에서 성장률 +15%, 턴당 충성심 +3 스페인 건설자가 고유 시설 '''전도관'''을 건설 가능 |
5.1.2. 개혁 교회(Reformed Church)[6] 패치로 개신교에서 제도명 변경
패치로 개신교에서 제도명 변경
[image] '''개혁 교회''' | ||
가끔 한 번쯤의 반항은 좋을 수도 있다고들 하지만, 16세기 개신교 종교 개혁만큼 극심한 변화를 불러온 경우는 드물 것입니다. 부유층이 지옥으로부터의 면죄부를 살 수 있도록 한 가톨릭 교회의 전대사에 독일 신학자 마틴 루터가 항의하며 저항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곧 유럽 전역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항의자들 사이에서 퍼졌고, 결국 교회와의 종교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루터교는 신성로마제국 전역으로 퍼졌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는 개혁 교회들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와중에 영국의 헨리 8세는 아내와 이혼하고 더 젊은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성공회를 창시했습니다. 기존에 수용되었던 '성경'이 인본주의와 과학혁명에 의해 시험대에 오르면서 가톨릭주의는 이미 약화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번창하는 대도시와 새롭게 부상하는 확고한 중산층 사이에 자유사상이 확산되며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종교개혁 역시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30년 전쟁은 독일을 황폐화시켰고 로마 신성제국에서 가톨릭교의 권위를 되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총 인구 25~40%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서기 1648년의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은 각 군왕이 통치 국가의 종교를 결정하는 권한을 보장하고 전 지역에 거주하는 기독교인들이 특정 시간대에 한해 공공에서 신앙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여 마침내 전쟁을 종식시켰습니다. 종교 분야의 개혁이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내에서 일어난 개혁 운동은 종교의 분립이 아닌 상위 신앙의 새로운 종파를 형성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개혁자들은 전통 '교회'를 진보적인 인권 중심의 가치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핵심 가치의 해석에서 차이의 격차를 좁히기 시작했고 의무와 관례의 진화적인 성격을 강조했습니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각각 근대 문명에 대한 연관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 ||
인용구 | '''"나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다는 등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양쪽에 다 친구가 있거든.'''" - 마크 트웨인 '''"현대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화약, 인쇄술, 그리고 개신교 신앙이다.'''" - 토머스 칼라일 | |
선행 사회 제도 | 길드, 신권 |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
영감 조건 | 플레이어의 종교를 믿는 도시가 6곳이 됨. | |
효과 | 정부 체제 '''신권 정치''' : 군사 2, 경제 2, 외교 1, 와일드카드 1 세계 불가사의 '''성 바실리 대성당''' 건설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종교 전쟁''' : 비종교 유닛이 다른 종교를 따르는 문명의 유닛과 전투할 경우 전투력 +4 경제 정책 카드 '''종교 교단''' : 종교 유닛이 종교 전투시 신앙력 +5 경제 정책 카드 '''종파 공동 사용권''' : 성지의 건물에서 신앙 추가 제공 - 도시의 인구수가 10 이상이면 +50%, 성지의 인접 보너스가 3 이상이면 +50% 스코틀랜드 건설자가 고유 시설 '''골프 코스'''를 건설 가능 |
5.2. 문화 비용 600
5.2.1. 인본주의 (Humanism)
[image] '''인본주의''' | ||
영국 인본주의협회에서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인간과 다른 생물을 윤리적 관점의 중심에 둔다. 2)세상을 자연적인 장소로 인식하고 과학과 이유에 의존하여 이를 이해한다. 3)모든 지역에서 인간이 번영할 수 있도록 힘쓰고 지원하며 모든 이의 인권을 옹호한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개념은 적어도 기원전 1500년 이래로 인도와 동양의 다양한 철학에서 존재해 왔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석가모니가 초자연적 현상과 '영혼'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표출했으며, 자라투스트라는 인간이 선택권과 작용에 의해 품위를 가지는 생각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크세노파네스에서 플라톤에 이르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인간적인 이유라는 측면에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에피쿠로스는 행복 실현을 위한 인간 중심적 접근 방식을 간결하게 요약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대부분의 무슬림 학자들이 개인주의, 세속주의, 회의론 및 자유주의에 대한 저서를 통해 존재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해석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유럽 문명에는 인본주의가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가톨릭 교리에 구속되어 있었던 인본주의를 부활시킨 것은 이탈리아 시인들의 '고전'에 대한 재발견 덕분이었습니다. 1300년대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인본주의의 아버지'로 자주 불립니다. 그는 키케로의 분실된 서신을 찾아 자국어로 번역했으며, 이 또한 르네상스의 시작에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로운 대학교의 학자들이 고전 연구(문법, 시, 수사학, 역사 및 도덕철학으로 이루어진 인문학)를 후원하는 일이 늘어났고 결과적으로는 깨달음에 대한 세속적인 접근 방식의 관념이 여러 국가로 확산되었습니다. 재발견되거나 새롭게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와 리비우스 등의 그리스어 및 로마어 필사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여기에 편승한 세속적인 작품들은 참신하고 근본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전위적 개념까지 보여주었습니다. | ||
인용구 | '''"인류의 네 가지 특징은 호기심, 자유정신, 좋은 취향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인류에 대한 신념이다.'''" - E.M. 포스터 '''"인류에 대한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인류는 거대한 바다와 같아서, 몇 방울의 바닷물이 더러워졌다고 바다 전체가 오염되지는 않는다.'''" - 마하트마 간디 | |
선행 사회 제도 | 중세 시장, 길드 | |
후행 사회 제도 | 중상주의, 계몽주의 | |
영감 조건 | 위대한 예술가를 획득하십시오. | |
효과 | 특수지구 극장가의 건물 '''미술관'''과 '''고고학 박물관''' 건설 가능 세계 불가사의 '''타지마할''' 건설 가능 위인 정책 카드 '''발명''' : 위대한 기술자 점수 +2 위인 정책 카드 '''프레스코화''' : 위대한 예술가 점수 +2 |
영감 조건을 맞추기 매우 힘든 편이다. 위대한 예술가를 획득해야 하는데 이 위인 점수를 주는 건물이 하필이면 이 사회 제도가 필요한 모순이 있기 때문. 그래서 성지에 예술 위인 점수를 받는 러시아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영감 없이 뚫게 된다.
5.2.2. 외교부 (Diplomatic Service)
[image] '''외교부''' | ||
외교를 '수행'한다는 것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명확한 조치 중 하나입니다. 또한 외교는 최초의 도시 국가 시절부터 '수행'되어 왔습니다. 원래 외교는 통치자의 사절이 수행했으며 일반적으로는 특정 임무를 안고 떠났다가 협상이 완료되면 고국으로 복귀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사절 대신 사절의 머리만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기도 했습니다. '외교부'는 통치 가문의 일족이나 고위 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외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수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에는 8세기에 교황과 비잔티움 황제가 체결한 관계를 제외하고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극동 지역에서 관계는 더 격렬하게 이루어졌지만 송나라에서는 인접 국가에 중국의 사절을 상주시키는 방식을 확립했습니다. '근대 외교'는 르네상스 시대 초기의 이탈리아 북부 도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400년대에 밀라노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자의 독려 하에 다른 도시 국가에 상주대사관을 설립하여 무역 관계와 방어 조약을 체결하고 교황에게 연합 전선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사의 신임장을 국가 원수에게 보여주는 경우 등의 외교부와 관련된 대부분의 전통은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1455년, 밀라노는 주요 강대국(프랑스)의 왕궁에 상주대사관을 배치한 최초의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확산되었으며 스페인은 처음으로 다른 자치 국가(영국)와 대사를 '교환'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16세기 후반에는 전쟁 중인 국가를 제외하고, 상주대사관이 국제 관계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대사로는 보통 협상 경험이 적거나 다른 경험이 많은 귀족이 임명되었습니다. 대사는 변호사, 언어학자, 군인과 첩자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보좌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강대국이 전 세계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먼 지역의 새로운 문명과 접선하고 제국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외교는 어설픈 이에게 맡길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1600년대 후반에는 국제법, 언어, 문화사, 경제 등을 전공한 대학교 졸업생들을 통해 숙련된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충족될 수 있었습니다. | ||
인용구 | '''"외교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바로 작은 문제와 큰 문제입니다. 작은 문제는 알아서 해결될 것이고, 큰 문제는 당신이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 패트릭 맥기네스 '''"훌륭한 외교관은 여자의 생일을 기억할 뿐 나이는 기억하지 않는다.'''" - 로버트 프로스트 | |
필요 사회 제도 | 길드 | |
영감 조건 | 다른 문명과 동맹을 체결. | |
효과 | 외교에서 '''상주 대사관''' 설립 가능 스파이 유지 능력 +1 유닛 '''스파이''' 생산 가능 전쟁 명분 '''성전''' 전쟁 명분 '''해방 전쟁''' 외교 정책 카드 '''마키아벨리즘''' : 스파이 생산시 생산력 +50%, 스파이 작전 소요시간 -25% 외교 정책 카드 '''비셀방켄''' : 동맹인 국가와 연결된 교역로에서 양쪽 도시에 식량 +2, 생산력 +2, 동맹 점수 획득 속도 +25% (선거권에서 민주주의 병기창으로 대체됨) |
외교 정책 카드 비셀방켄은 오리지널 시절에는 현대 시대 사회 제도 선거권의 "민주주의 병기창"의 효과...에서 동맹 점수 획득 속도 추가로 더 강화된 것이다. 물론 비셀방켄이 생기면서 민주주의 병기창의 효과도 추가로 강화되었다.
5.3. 문화 비용 720
5.3.1. 중상주의 (Mercantilism)
[image] '''중상주의''' | ||
1600년대에는 스페인,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러시아와 유럽의 여러 강대국이 제국을 형성했으며,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상주의라는 체제를 구축해야 했고, 실제로 식민지는 모국을 위한 주요 '돈줄'이었습니다. 당연히 중상주의는 절대주의 군주와 모국 안에 거주하는 각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지배적인 경제 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간단히 말해 왕실에서는 식민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완제품, 활용 가능한 선박과 거래 가능한 대상을 제한한 다음 모든 부분에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중상주의를 완성하게 된 것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식민지를 방어하고 지배하기 위해 병사와 배를 보내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했고, 영국 정부는 수십 년에 걸쳐 '유익한 방임'의 태도를 취했으며 식민지 무역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되 이를 집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식민지는 프랑스, 홀랜드, 스페인, 그리고 북미와 남미의 인접 식민지에서 빠져나온 물품을 통해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하지만 7년 전쟁과 여러 위기로 인해 현금이 부족했던 의회에서는 1763년에 다수의 규제와 세금을 집행하는 데 동의했으며 심지어는 항해 조례와 사탕 조례를 비롯한 새로운 법안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큰 오판이었으며 아메리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중상주의를 다양한 수준으로 수용했으며 실행의 정도 역시 다양했습니다. 네덜란드는 국제 무역을 제한하는 데 큰 관심이 없었으므로 일부의 중상주의 정책만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30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스웨덴과 덴마크 모두 무역 제한법을 통과시켰으며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강요했습니다. 한편 이러한 경제 정책을 원했던 신성로마제국은 분권화 및 다양화의 양상이 너무 심해 이러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이르게는 1539년에 중상주의를 도입했지만, 당시 칙령으로 인해 스페인 및 플랑드르산 양모 제품의 수입과 금괴의 수출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는 중상주의 경제의 보편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중상주의는 효과를 잃었으며 1860년에는 영국에 의해 중상주의 시대의 마지막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 ||
인용구 | '''"비시장경제국을 본 결과, 시장경제에 대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갑자기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 에스더 다이슨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이 국가의 권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 피터 버거 | |
선행 사회 제도 | 인본주의 | |
후행 사회 제도 | 식민주의, 토목 공학 | |
영감 조건 | 위대한 상인을 획득. | |
효과 | 열대우림에 제재소 시설 건설 가능 야영지 시설에서 생산력 +1, 식량 +1 유닛 '''사략선''' 생산 가능 군사 정책 카드 '''병참 지원''' : 우호적인 영토에서 턴을 시작하는 경우 이동력 +1 경제 정책 카드 '''삼각무역''' : 각 교역로에서 금 +4, 신앙 +1 (세계화에서 전자상거래로 대체됨) |
5.3.2. 계몽주의 (The Enlightenment)
[image] '''계몽주의''' | ||
계몽주의는 종교적, 정치적 통설에 대한 의문 제기로 표현되는 경험주의, 과학적 합리주의 및 환원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는 광범위한 지적, 철학적, 문화적, 사회적 운동이었습니다. 계몽주의는 정치, 과학, 종교, 미학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기고한 여러 지역의 영향력 있는 몇몇 사상가의 아이디어에서 튀어 나와 유럽 전역에 확산되었으며 다양한 경향이 혼합되어 변화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계몽주의는 문명을 새로운 해협으로 쓸어내려 보낸 이성주의라는 해일이었습니다. 원래 이성의 힘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노, 소크라테스, 밀레투스의 탈레스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로 대변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 의해 탐구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사상을 도입하고 변형하여 자연 윤리 질서 및 자연법에 대한 자체 사상을 포함시켰지만, 기독교에서는 향후 몇백 년에 걸쳐 이러한 사상들을 거부하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성을 이해의 도구로 부활시켰지만 이성을 기독교의 드러난 진실이라는 영적 계시에 종속시켰지만, 이 상황은 고대 고전, 인본주의, 실험 과학, 르네상스의 재발견과 종교개혁을 통해 바로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컨,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등의 사상가는 교회의 교리에 따른 우주의 원리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볼테르, 디드로, 루소, 흄, 스미스 등도 인간 조건에 대한 새로운 사상을 제시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루이 14세가 사망한 1715년부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된 1789년까지를 계몽주의 시대로 정의합니다. 해당 기간 동안에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특히 책과 소논문으로 과학 학교 및 협회, 문학 살롱, 프리메이슨의 집회소지 등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을 유포했기 때문입니다. 존 로크, 토마스 홉스와 토마스 페인 등의 사상가가 개인의 권리, 사회 계약과 대의 정체를 옹호한 관계로 특히 합리주의 정치의 개념이 매섭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군주와 교회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위협적인 사상이었으며 나폴레옹 전쟁, 산업혁명을 위시한 다양한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 ||
인용구 | '''"새로운 의견은 이미 보편화 되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다른 이유도 없이, 항상 의심받거나 대게 반대를 당한다.'''" - 존 로크 '''"무엇이든 자연에 반하는 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이며 이성에 반하는 그 모든 것은 불합리하다.'''" - 바뤼흐 스피노자 | |
선행 사회 제도 | 인본주의, 외교부 | |
후행 사회 제도 | 민족주의, 오페라와 발레 | |
영감 조건 | 위인을 3명 획득하십시오. | |
효과 | 종교적 관광의 영향이 50% 감소합니다. 경제 정책 카드 '''합리주의''' : 캠퍼스의 건물에서 과학 추가 제공 - 도시의 인구수가 10 이상이면 +50%, 캠퍼스의 인접 보너스가 4 이상이면 +50% 경제 정책 카드 '''자유 시장''' : 상업 중심지의 건물에서 금 추가 제공 - 도시의 인구수가 10 이상이면 +50%, 상업 중심지의 인접 보너스가 4 이상이면 +50% 경제 정책 카드 '''자유주의''' : 2개 이상의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서 쾌적도 +1 (선거권에서 뉴딜 정책으로 대체됨) |
6. 산업 시대
6.1. 문화 비용 800
6.1.1. 식민주의 (Colonialism)
[image] '''식민주의''' | ||
식민주의는 천 년에 걸쳐 전 세계에 확산되었던 역사적 현상입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모두 지중해 전역에 식민지를 형성했으며, 로마 제국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국가 정복을 통해 식민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인구 급증, 기술 발전, 제한된 경제, 군사적 경쟁, 종교적 광신과 단순한 호기심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영토의 탐험과 식민지화를 위한 협력을 시작한 시기는 16세기 중반 및 후반 무렵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 앞장선 국가는 약소국이었던 포르투갈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1385년 이후에 통일된 왕국이 되었고 대국과 달리 내부 분쟁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식민지 정책을 빨리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배로 대륙을 우회하여 전설의 극동에 도착하는 방식으로 부를 찾고 싶었던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 지역을 따라 식민지 정착지와 요새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대륙을 차지한 국가는 바로 스페인이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4분의 1 정도 적게 계산하는 실수를 범하여 서쪽으로 3,862킬로미터 정도만 항해하면 극동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대신 그는 자원이 풍부하고 인적이 상당히 적은 2개의 대륙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아시아에 도착했다고 고집했습니다. 이후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세계에 식민지를 가진 국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유일했지만 나중에는 네덜란드, 프랑스와 영국에서도 식민지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를 통해 엄청난 부와 만족을 얻은 '강대국'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각자 알려진 세계로 관심을 돌려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전역의 섬을 식민지화했습니다. 영국 해군과 성능 좋은 다수의 총이 있는 영국은 특히 식민지화에 능했고, 나중에는 기존의 식민지국(미국)과 후발주자(독일 및 일본)도 분주하게 식민지 제국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당성(재무, 종교, 백인의 책무라는 도의, 정치)이 무엇이 됐든, 힘 없는 원주민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모든 국가는 식민지화를 통해 이들을 소위 '문명화'시켰습니다. | ||
인용구 | '''"정치, 식민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전쟁 모두 인간의 뇌에서 나왔음을 기억하라.'''" -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식민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강제로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 이성을 식민지 개척자 자신들에게 확산시킬 것인가요?'''" - 앤서니 버지스 | |
선행 사회 제도 | 중상주의 | |
후행 사회 제도 | 자연사 | |
영감 조건 | 천문학 기술을 연구. | |
효과 | 사절 +2 군사 정책 카드 '''원주민 정복''' : 이전 시대의 유닛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때, 처치한 유닛의 전투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을 얻음. 경제 정책 카드 '''식민지 세금''' : 수도와 다른 대륙에 있는 도시에서 금 +25%, 생산력 +10% 외교 정책 카드 '''영국 식민 통치''' :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각 도시 국가마다 과학, 문화, 신앙, 금 각 +2 |
6.1.2. 오페라와 발레 (Opera and Ballet)
[image] '''오페라와 발레''' | ||
유럽 문명에 교육이 활성화된 이후, 시간이 남아 돌던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들을 천박한 평민과 차별화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즉, 세상이 오페라와 발레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야코포 페리는 서기 1597년경에 세계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는 '카메라타'라는 피렌체의 인본주의자 단체를 위한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 한편 같은 세기에는 발레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궁중 무도 형태로 진화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상징적인 형식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와 발레 모두 나폴리, 빈, 파리와 여러 문화 중심지에서 더욱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으며, 평민이나 즐기던 음악과 춤과 차별되었습니다. 바로크 시대 초기에는 고전 신화에서 파생된 이야기와 유명 카스트라토가 주요 구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세리아가 지배적인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페라가 노랫말의 시적 요소에 집중한 반면 바로크 시대 말기에는 발성 기교 즉, 벨칸토 기법이 최고로 간주되었습니다. 베르디와 바그너를 비롯한 소위 '오페라 황금기'의 작곡가들은 독특한 국수적 전통을 발전시켰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생겨난 기업가 출신의 중산층은 '교양' 추구를 목적으로 극장을 자주 방문할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갖추었습니다. 낭만주의라는 물결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오페라는 출세한 평민들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사진에 이은 라디오 덕분에 오페라를 집에서도 접할 수 있게 되어, 20년 후에는 하층 계급민도 오페라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16세기에는 프랑스 앙리 2세의 왕비였던 카트린 데메디치가 자신의 화려한 궁중 행사에 참여하는 귀족과 여성을 교화하기 위해 고급 사교춤인 궁중발레 공연을 후원했습니다. 그녀는 다양한 분야를 후원했지만 특히 예술에 대한 관심이 깊었습니다. 100년 후에는 무도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루이 14세가 발레를 대중화하고 표준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고, 1661년 그는 파리에 왕립 무용 아카데미를 설립하도록 지원했습니다. 1681년에는 발레 공연이 궁중에서 무대로 넘어갔으며 지젤과 라 실피드 등의 낭만주의 초기 작품은 제정 러시아를 비롯한 프랑스 밖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러시아의 작곡가와 안무가들은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켰으며, 대중들도 전쟁과 혁명을 통해 이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문화 비용 | 725 | |
인용구 | '''"오페라는 사람이 등에 칼을 찔리고도 피를 흘리지 않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 로버트 벤클리 '''"발레는 섬세한 강인함과 완강한 정확성을 보여준다.'''" - 아인 랜드 | |
선행 사회 제도 | 계몽주의 |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
영감 조건 | 미술관을 건설. | |
효과 | 사절 +2 세계 불가사의 '''볼쇼이 극장'''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그랜드오페라''' : 극장가의 건물에서 문화 추가 제공 - 도시의 인구수가 10 이상이면 +50%, 극장가의 인접 보너스가 3 이상이면 +50% 위인 정책 카드 '''교향곡''' : 위대한 음악가 점수 +4 |
6.2. 문화 비용 1050
6.2.1. 자연사 (Natural History)
[image] '''자연사''' | |
'자연사'는 아름답지만 혼란스러운 옛날식 용어입니다. '자연'과 '역사'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사'는 과거에 지구에 존재했던 인간 외의 생물에 대한 연구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연사는 각자의 환경에 존재하는 동물, 식물, 균류 등에 대한 학문입니다. 실험 연구보다는 관찰에 의존하는 자연사 학자들은 지저분한 장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종종 연구물을 발행하기도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관찰한 자연의 다양성에 이성을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었지만, 약리학의 자연사와 관련된 응용 방식을 가장 먼저 찾아낸 사람은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였습니다. 자연의 치유적 활용은 18세기를 통틀어 해당 분야의 주안점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18세기 자연사의 주요 원칙은 항상 신이 명한 '존재의 거대한 고리'이고, 광물, 식물, 원시 동물과 복잡한 동물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사물이 완성 상태로 서열화되고 궁극적으로는 인류에서 절정에 도달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가톨릭 교회에서 수용하기에 적절한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탐험으로 인해 각양각색의 새로운 생명체가 표면화되었습니다. 알려진 종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어 이를 분류군으로 나누기 위한 체계적인 분류가 필요했고, 이런 필요가 절정에 달했을 때 스웨덴의 과학자 칼 린네가 1735년에 획기적인 체계를 발행했습니다. 교회의 엄격한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자연사는 놀라운 기세로 확대되었습니다. 자연 이야기는 콩트 드뷔퐁이 1749년부터 1804년까지 집필한 36건의 백과사전으로, 알려진 자연사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산업 시대에는 자연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마추어 박물학자들이 모든 식물원을 점령했고 탐험가들은 먼 지역의 생소한 생물들을 계속해서 들여왔습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전역에서 자연사 협회와 거대한 공공 박물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뼈, 가죽과 곤충 표본을 전시할 수 있도록 건축된 런던과 워싱턴의 박물관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학생들의 교화 용도로 활용되었습니다. | |
인용구 | '''"제가 창조 때 있었다면, 우주가 더 잘 정리되는 데 있어 유용한 조언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 넬슨 알그렌 '''"우리는 자연사 모든 곳에서 동물들이 먹이, 습성, 그리고 서식지에 따라 신기하게 적응하는 내용을 끊임없이 발견한다.'''" - 알프레드 월리스 |
선행 사회 제도 | 식민주의 |
후행 사회 제도 | 보존, 대중 매체 |
영감 조건 | 고고학 박물관을 건설. |
효과 | 사절 +2 자원 '''사적지''' 발견 유닛 '''고고학자''' 생산 가능 세계 불가사의 '''예르미타시 미술관''' 건설 가능 특수지구 '''워터파크''' 건설 가능 특수지구 유흥단지의 건물 '''동물원''' 건설 가능 특수지구 워터파크의 건물 '''대관람차'''와 '''아쿠아리움''' 건설 가능 |
6.3. 문화 비용 1010
6.3.1. 토목 공학 (Civil Engineering)
[image] '''토목 공학''' | |
기원전 2550년경, 임호테프는 '사카라'라는 공동 묘지에 디오세르를 위한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했으며, 그 결과 군사 공학과 상반되는 개념인 '토목' 공학이 탄생하였습니다. 토목 공학이란 소위 '공익'을 위해 구조물을 건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수학, 물리학과 경영학의 조합에 대한 명칭은 아직 없던 시절이었지만 고대의 토목 공학 프로젝트는 전설적이었고 덕분에 카나트 관개 수로, 파르테논, 아피아 가도, 만리장성과 제타바나라마야 사리탑 등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분주했던 로마의 토목 기술자들은 로마가 제국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한 도로, 수로(님의 가르교 등), 다리(로마의 파브리키우스다리 등), 댐, 부두 및 관개 시스템 등의 물리 인프라를 잘 구축했습니다. 기원전 15년경에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가 집필한 건축십서는 토목 공학에 대한 최초의 논문이었으며 중세 시대를 통틀어 공공 건축의 표준으로 활용되었고, 수년 동안 유럽에서는 이를 따랐습니다. 결국 산업혁명의 도래와 새로운 건축 자재, 도구 및 수요와 함께 건축 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18세기 초에는 '토목 공학'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1747년에는 문명 최초의 토목 공학 학교인 '국립토목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곧 토목 기술자들이 지역 전역에 걸쳐 분주히 구조물을 건축하기 시작했으며 도시의 지평선이 변하고 전원 지역이 건물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본인을 토목 기술자라 자칭한 인물은 에디스톤 등대를 건축한 존 스미턴이었습니다. 1818년에는 세계 최초의 공학 단체인 ICE(영국토목기술협회)가 런던에 설립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음주와 언쟁으로 가득한 모임으로 변질되기 일쑤였습니다. 1835년에는 렌셀러폴리테크닉대학교에서 미국 최초로 토목 공학 학위를 수여했으며, 1905년에는 노라 스탠튼 브래치 바니가 코넬대학교에서 여성 최초로 토목 공학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진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완전히 개봉되었습니다. | |
인용구 | '''"향상은 곧은 길을 만듭니다, 그러나 향상 없이 구부러진 도로는 천재의 도로입니다.'''" - 윌리엄 블레이크 '''"사람들이 완벽한 바보도 쉽게 다룰 수 있도록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에,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완벽한 바보들의 엉뚱한 기발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 더글러스 애덤스 |
선행 사회 제도 | 중상주의 |
후행 사회 제도 | 도시화 |
영감 조건 | 서로 다른 특수 지구를 건설.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초원/평원의 언덕에도 농장 시설을 건설 가능 세계 불가사의 '''자유의 여신상'''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공공 사업''' : 건설자 유닛 생산시 생산력 +30%, 생산되는 모든 건설자의 건설 횟수 +2 경제 정책 카드 '''마천루''' : 모든 불가사의 건설시 생산력 +15% |
6.3.2. 민족주의 (Nationalism)
[image] '''민족주의''' | |
정치학자의 의견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사회 자급력이 가능한 산업 경제, 권한 및 통합 유지가 가능한 중앙 통치권, 그리고 지역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중심 언어나 중심 언어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합의 보유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되는 근대 사회에서 부상하고 번영한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민족주의는 마을, 지역이나 대가족보다는 국가와 우선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는 오만한 애국심입니다. 민족주의는 히브리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 로마, 중국, 심지어는 가톨릭 유럽에서도 이러한 자만심이 생겼습니다. 중산층의 증가, 나날이 더해가는 이들의 정치적 열망에 이은 민주주의의 발달은 민족주의의 부상을 부채질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표출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테러'를 수용한 혁명 사상가들에게 있어 '국가'란 '국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으며, 사람들은 역사 상 최초로 집단의 의지에 맞는 정부를 형성하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원칙을 통해 '국가'를 미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문명의 정치적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헤겔 및 헤르더와 같은 독일 철학가들은 국가의 문화적 자기 표현을 통한 민족주의 의식이 근대 사회를 결집시켰다고 주장했고, 이어서 나폴레옹 전쟁은 각종 민족이 인종, 민족, 언어 또는 종교적 공감대를 이유로 외국의 지배를 거부하게 만든 자극제가 되었으며, 지배가 황제나 혁명가 중 어떤 주체에 의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오스만 제국 역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폴란드, 그리스, 마자르를 위시한 온갖 유형의 민족이 민족주의적 발언권을 찾았습니다. 변방에서는 아일랜드, 노르웨이와 불가리아에 확산된 민족주의에 탄력을 받은 독립 운동이 진전을 거두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여러 다루기 힘든 소왕국들은 연합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형성했으며 각 국가에는 공통적인 정체성과 목표 의식이 있었습니다. 또한 세르비아에서는 이러한 모든 요소가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세계대전의 도화선으로 작용했습니다. | |
인용구 | '''''국가주의가 국가를 세우는 것이지, 반대로 되지는 않다네.'''" - 어니스트 겔너 '''"부족주의와 민족주의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은 인류 진화 과정에 탄력을 제공한다.'''" - 아서 키스 |
선행 사회 제도 | 계몽주의 |
후행 사회 제도 | 도시화, 초토화 작전 |
영감 조건 | 전쟁 명분을 사용해 선전 포고.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스파이 유지 능력 +1 같은 유닛 2기로 군단이나 선단 형성 가능 전쟁 명분 '''식민지 전쟁''' 군사 정책 카드 '''대육군''' : 산업 시대 및 그 이전 근접/대기병/원거리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군사 정책 카드 '''국가정체성''' : 부상에 의한 전투력 감소가 50% 감소됨 브라질은 유닛 전함을 대체하는 고유 유닛 '''미나스 제라이스'''를 생산 가능 (전함은 과학 기술 강철에서 가능) |
6.4. 문화 비용 1210
6.4.1. 도시화 (Urbanization)
[image] '''도시화''' | |
2050년에는 세계 총 인구의 70% 정도가 도심 지역에서 거주하게 되어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모두 소진하고 인류 문명에서 전례 없었던 규모로 폐기물이 쌓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및 중국에 최초의 마을이 들어서면서 다가오기 시작한 트렌드입니다. 당시 인류는 마침내 영세 농업 이상의 단계로 넘어간 상태였으며 원시 사회는 사제, 철학가, 관료와 같은 '쓸모없는' 부류를 거둬 먹일 수 있는 상태로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인구는 현지 농업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었으며 '현지'의 범위는 운송 수단의 발달과 함께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농업 생산에는 많은 노동이 요구되었으며 도시에서는 장인과 다른 업계 종사자가 취할 수 있는 직업은 극히 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에 고개를 든 농업 및 산업혁명은 수천 년에 걸쳐 유지되던 균형을 깨뜨렸습니다. 1800년에는 인류의 총 3%만이 도시에 거주했지만 1900년에는 이 수치가 14%로 증가했고 인구가 100만 명을 초과한 도시가 12곳으로 늘어났습니다. 불과 50년이 지나지 않아 이 비율은 두 배로 급증했으며 전 세계 83개의 도시에서 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기 시작했고, 도시는 시간이 갈수록 붐비기 시작하며, 1975년에 3곳에 불과했던 인구 천만 이상 메가시티가 2025년에는 27곳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회학자들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심 성장을 제한하는 네 가지의 자연적인 요소 즉, 1) 식량 및 식수 공급원과의 거리, 2) 벽과 요새의 지리적 규모, 3) 느린 우차와 보행자에 따른 통행 속도, 4) 전력의 가용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기 엔진과 모터 차량, 천연 가스와 전기, 아이스박스와 실내 화장실, 대포와 비행기가 발명되었습니다. 전화와 자동차가 상용화 되면서 20세기 초에는 또 다른 도심화의 단계와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현상이 발생했며,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일하는 공장과 사무실 근처에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전원' 지역에 다시 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인용구 | '''"익명성은 산업혁명과 도시 집중화 속에서 처음 느껴질 수 있었다.'''" - 빈트 서프 '''"제가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게 극대화되어 있다는 것이죠. 아름다움도, 추잡함도, 모두요.'''" - 조지프 브로드스키 |
선행 사회 제도 | 토목 공학, 민족주의 |
후행 사회 제도 | 대중 매체, 동원령 |
영감 조건 | 도시 인구를 15까지 성장시킴. |
효과 | 특수지구 '''주택가''' 건설 가능 (콩고는 길드에서 가능한 '''음반자'''로 대체됨) 군사 정책 카드 '''군사 연구''' : 사관 학교와 항구, 르네상스 성벽에서 과학 +2 경제 정책 카드 '''대중교통''' : 농장이 지어진 타일에 주택가를 건설하는 경우 타일의 매력도 1점 당 금 100 획득 |
6.4.2. 초토화 작전 (Scorched Earth)
[image] '''초토화 작전''' | |
전쟁의 목적은 단순히 적군을 물리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전쟁을 계속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과 사기까지 파괴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고대부터 르네상스 후기까지 민간인은 항상 중간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지만, 대량 파괴 즉, 초토화 작전이 합법적인 군사 작전이 된 것은 산업 시대의 전쟁이었습니다. 초토화 작전은 식품, 저장품, 인프라 등 적에게 유용할 수 있는, 전쟁의 수행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제거 또는 파괴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181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공을 저지하고 프랑스군을 굶게 하려고 러시아 전원 지대를 불태웠습니다. 이 방어적 초토화 작전은 알렉산드르 1세가 프랑스 대육군이 자급자족하게 두느니 자국의 농경지를 파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진행한 것입니다. 남북전쟁에서 윌리엄 T. 셔먼 장군은 적진에서 초토화 작전을 시전했습니다. 셔먼의 '대행진'으로 수백 킬로미터의 철로를 파괴되었고, 수백만 킬로그램의 식량이 약탈당했으며, 군사 시설은 물론 민간인 건물도 불탔습니다. 모든 국가가 초토화 작전을 어느 정도까지는 사용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엄청난 규모로 사용되었고, 그 참담함은 특히 독일의 소비에트 연방 침공 시 극명해졌습니다. 러시아인들이 후퇴하면서 자국에서 파괴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3년 뒤에 독일이 후퇴하면서 마저 파괴했습니다. 이 전략이 민간인 인구에 미치는 영향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었고, 후에 한국과 베트남 전쟁 때도 진행되어 1977년 제네바 협정에서 마침내 금지되었습니다. | |
인용구 | '''"전쟁은 지옥이다.'''" - 윌리엄 테쿰세 셔먼 '''"나는 우정 또는 초토화, 이 두 가지 관계만 이해할 수 있다.'''" - 로저 에일스 |
선행 사회 제도 | 민족주의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전장포를 2개 생산. |
효과 | 사절 +2 군사 정책 카드 '''총력전''' : 약탈을 통해 얻는 수확량 +100%, 교역로 약탈 시 보상 +50%(G/S) 경제 정책 카드 '''공용징수''' : 개척자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타일 구매 비용 -20% 위인 정책 카드 '''군사 조직''' : 위대한 장군 점수 +4 |
7. 현대 시대
7.1. 문화 비용 1540
7.1.1. 보존 (Conservation)
[image] '''보존''' | |
천연 자원을 보전한다는 생각은 서기 1662년에 존 이블린이 왕립 학회에 제출한 논문(산림 또는 산림수의 담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목재 자원은 수많은 선박, 건물과 다리 덕분에 심각한 수준으로 고갈되고 있었으며 이블린은 벌목을 관리하고 벌목 지역에 나무를 다시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착취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환경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보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부 사람들은 후손을 위해 청정한 땅, 물과 야생동물을 보전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임을 다른 미국인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을 이상화했으며 심지어는 기퍼드 핀초트(미 산림청 초대 장관)와 같은 실용주의자들조차 재생자원의 재생 가능성을 보전하여 미국의 국력과 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미국 도시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고 서부 개척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자연'이 상업화되고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수입이 높아지면서, 여가와 자연 보전은 공통적인 주제가 되었고 하이킹, 캠핑, 탐조 및 기타 야외 활동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미국 시민들의 전반적인 지원이 힘입은 미국 의회에서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1872년), 요세미티 국립공원(1890년)과 국립공원 관리청(1916년)의 설립에 기여한 랜드마크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곧 이어 각 주에서는 곳곳에 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을 형성하고 물고기와 사냥감을 대량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했지만 불쌍한 여행비둘기는 결국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공원의 포식자 제거에 따른 개체 소멸 같은 간혹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발생했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도 곧 자연 보호 정책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기근 예방과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는 개발 도상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집니다. | |
인용구 | '''"물과 공기는 생명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데, 이제는 전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었다.'''" - 자크 쿠스토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열대우림을 파괴한다는 것은, 밥을 짓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 그림을 땔감으로 쓰는 것과 같다.'''" - 에드워드 윌슨 |
선행 사회 제도 | 자연사 |
후행 사회 제도 | 문화 유산 |
영감 조건 | 놀라운 매력도를 가진 타일에 주택가를 건설하십시오. |
효과 | 사절 +3 유닛 '''박물학자'''를 신앙으로 구입 가능 건설자가 지형 특성 '''숲 (이차림)'''을 건설 가능 지형 특성 '''숲(노숙림)'''의 인접한 타일 매력도 +1 (총 +2) 경제 정책 카드 '''자원 관리''' : 전략 자원이 1개라도 어떤 도시에서든 해당 자원을 요구하는 유닛을 생산/구매 가능 |
7.1.2. 대중 매체(Mass Media)
[image] '''대중 매체''' | |
집단으로서 '대중 매체'는 근본적으로 산업 시대의 현상이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대중 매체가 시작되었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18세기 런던 그러브 스트리트의 출판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상업 인쇄 산업의 성장이 시작점이었다는 주장이 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값싼 싸구려 소설, 에로틱 소설과 주간 타블로이드 신문이 수천 개의 증기 인쇄기에서 복사되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쇄물은 새로운 공교육 체제 덕분에 글을 깨우치기 시작했지만 즐길거리가 거의 없었던 도시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판매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중의 지원에 힘 입은 출판 업계에서는 더 이상 귀족, 부유층과 성직자의 세련된 취향의 서적을 출간하지 않고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업 시대가 근대 시대로 전환되면서 미디어 소비자에게 영합하는 새로운 방식을 선사하는 여러 획기적인 기술들이 고안되었습니다. 1820년대에는 사진이 개발되었고 인쇄 이미지의 복제 방식이 해당 세기 전체에 걸쳐 개선되었습니다. 따라서 갓 글을 깨우친 대중에게는 잡지와 신문의 매력이 더욱 크게 느껴졌습니다. 1830년대에 발명되어 1850년대에 널리 확산된 전보는 개인 통신 분야에 대변혁을 일으켰으며, 신문이 이제 말 그대로 '새로운 소식'이 된 만큼 신문 판매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페니 신문은 끊이지 않는 전보를 통해 지역과 국가, 심지어는 전 세계(1863년에 대서양 횡단 케이블이 완공된 이후)의 소식과 광고물을 문 앞까지 배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영화로 이어졌고 주머니에 10센트만 있으면 누구나 두 시간의 현실 도피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영화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1927년에는 깜박이는 영상에 소리가 더해졌으며 전 세계는 엔터테인먼트의 홍수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통신 분야에서는 전보를 대체하기 위해 벨이 개발한 조그만 장치인 '전화'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이와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선 전신술은 결국 라디오의 개발로 이어졌으며 '상업' 라디오는 최초의 방송용 대중 매체로 음악, 뉴스와 광고를 가정으로 전파했습니다. 곧 이어 1950년대에는 TV가 놀랄만한 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사람들은 TV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추이는 비디오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대중 매체가 생겨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 |
인용구 | '''"대중 매체의 효과는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고, 중독의 장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래시 '''"당신이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정보가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당신이 신문을 읽는다면,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 마크 트웨인 |
선행 사회 제도 | 도시화, 자연사 |
후행 사회 제도 |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
영감 조건 | 라디오 기술을 연구.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세계 불가사의 '''브로드웨이'''와 '''리오의 예수상''' 건설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선전 활동''' : 전쟁 피로도 축적 -25% |
7.1.3. 동원령(Mobilization)
[image] '''동원령''' | ||
최초의 치프틴(스코틀랜드의 족장)이 신체 건강한 모든 부족원에게 몽둥이를 들고 자신을 따르라고 명령한 이래로, 동원령은 정부의 특권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동원령'이 지속되기 시작한 시기는 프랑스 혁명을 막아내기 위해 정부에서 시민을 대량 징집한 이후부터였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시절에는 전보와 철도를 위시한 새로운 기술로 인해 국가가 좀 더 효율적인 군사 징집 및 동원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남부 연방은 자유 신분을 가진 인구 중에서 대략 11%를 전쟁에 동원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프로이센은 75%의 예비군을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었으며, 이는 제 2차 슐레스비히 전쟁,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전쟁과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두 국가인 영국과 미국은 전 세계의 동원계획 분야를 주도했습니다. 영국은 제국 유지를 위해 다수의 영국군을 먼 지역으로 파병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했으며, 미국은 나름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많은 미국군을 먼 지역을 보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보어인과 맞닥뜨린 영국은 빠르게 병사를 동원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쿠바의 독립 운동에 자극을 받은 미국 역시 카리브 해와 필리핀의 불운한 스페인을 상대로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나머지 국가들도 이에 주목했으며, 1914년 7월에 아르치듀크 페르디난트의 암살 사건이 발생하자 먼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동원령을 발령했고 이어서 유럽의 모든 강대국이 뒤를 따랐습니다. | ||
인용구 | '''"전쟁을 준비할 때, 동원단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무력 정치를 하는 자들이 평화에 대해 가장 말을 많이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정부는 사람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적이 필요하다. 만약 실제 적이 없다면, 우리를 동원하기 위해 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 틱녓하인 | |
필요 사회 제도 | 도시화 | |
영감 조건 | 군단을 3개 보유. | |
효과 | 총독 타이틀 +1 같은 유닛 셋, 또는 군단과 단일 유닛으로 군대 또는 함대 형성 가능 전쟁 명분 '''영토 확장 전쟁''' 군사 정책 카드 '''군민봉기''' : 내 각 유닛의 유지비로 소모되는 금 -2 |
7.2. 문화 비용 1580
7.2.1. 자본주의(Capitalism)
[image] '''자본주의''' | |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전에도 인간은 노동, 거래와 투자라는 요소가 개입된 다양하고 복잡한 경제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대기근(1315-1317년)과 흑사병(1348-1350년)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장원제의 붕괴가 영국에서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4세기까지 경제적인 부분은 원시적인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영주는 사유지 운영을 위해 농노가 필요했으며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길드가 몽땅 사라져 버린 마을과 도시에는 임금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능공이 들어와 호구지책이 아닌 수익 창출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식민주의와 중상주의의 초석이자 자본주의의 전조가 되었고,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는 진보를 위한 동력이 아니며, 노동력이 거래의 가장 중요한 곳에서의 문명의 발목을 붙잡는 장애물이라고 가장 먼저 주장했습니다. 산업혁명이 태동하고 있었고 자유 시장과 임금 노동이라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만큼 애덤 스미스와 같은 이론가의 생각은 시기적절했습니다. 식민주의는 투자가들이 기대했던 노다지가 아니었고 오히려 산업 중상주의에서 새로운 일확천금의 기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형식의 생산 및 운송 분야에 투자한 산업 자본가는 단일 주기 동안에 엄청난 개인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토지 귀족과 국제적인 금융 가문보다 더 많은 수입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문명이 발생한 이래 처음으로 평민이 출신과 상관없이 부자가 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을 보면 임금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 많은 다른 평민들의 땀방울로 세워진 기업 제국이 존재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사회의 모든 계급층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최초의 체제였습니다. 노동조합의 결성으로 임금은 상승했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값싼 제품의 과잉 공급 덕분에 산업 국가의 생활 수준은 크게 윤택해졌습니다. 케인즈 경제학을 옹호하는 정부에서 일부 경제 활동을 규제했던 대공황과 1970년대의 석유 파동과 같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
인용구 | '''"자본주의의 고유한 문제는 축복의 불공평한 분배지만, 사회주의의 고유한 덕목은 고통의 평등한 분배이다.'''" - 윈스턴 처칠 '''"항상 부유층과 접촉하기 위해 노력해보세요. 부유층과 오랫동안 접촉하다 보면, 부유함이 좀 옮겨올 수도 있잖아요.'''" - 데이먼 러니언 |
선행 사회 제도 | 대중 매체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증권 거래소 2개 건설. |
효과 | 특수지구 주택가의 건물 '''쇼핑몰'''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시장경제''' : 국제 교역로에서 문화 +2, 과학 +2, 목적지 도시에서 개발된 사치 자원 및 전략 자원 당 금 +1 위인 정책 카드 '''자유방임주의''' : 위대한 상인 점수 +4 |
7.3. 문화 비용 660
7.3.1. 이데올로기(Ideology)
[image] '''이데올로기''' | |
근대 문명의 과정이 결정된 배경에는 다른 요인과 함께 현대적 '사상'(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보수주의, 진보주의, 다원주의, 인종차별주의, 페미니즘, 테러리즘 및 과학주의 등)과 사회 '기능의 원리'를 말하는 수많은 여러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데스튀트 드 트라시라는 철학가는 직접 명명한 자신의 '관념의 과학(Science of ideas)'과 관련하여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과학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고, 이데올로기는 편협한 인간의 사고에 수많은 의문을 제시하고 이성의 패권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여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할 임무가 있는 과학이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견해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그가 생각하는 혁명적 사고의 더욱 혐오스러운 요소와 연계했고, 이때 이성주의보다는 반감과 광신주의(그 놈의 '주의'는 참 많이도 활용됨)를 이데올로기에 부여했습니다. 칼 마르크스는 막스 베버와 카를 만하임 등의 영향력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와 함께 신념체제에 의해 위험에 처한 허위의식이라는 경멸적 맥락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진실, 일관성이나 명료성이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특정 그룹의 특수한 이해 관계에 대한 표현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지적인 구성입니다. 대중 매체가 도래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이데올로기는 이론으로 남았으며 모호한 학문적 논쟁의 주제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인쇄물, 라디오, 뉴스 영화와 TV를 통해 '이상'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되면서 모든 '사상'은 매우 직접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온갖 운동가들이 이런저런 사상에 정체성을 두었습니다. 20세기 문명의 모든 전쟁, 운동과 인종 학살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이슬린 앨더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사상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해질 것입니다. | |
인용구 | '''"아무리 비인간적인 시스템이어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속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 조 슬로보 '''"천천히 아이디어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정책으로 이어져 마침내 행동이 되어버린다.'''" - 난단 닐레카니 |
선행 사회 제도 | 대중 매체, 동원령 |
후행 사회 제도 | 핵 프로그램, 냉전 시대, 프로 스포츠, 선거 제도, 전체주의, 계급 투쟁 |
영감 조건 | 없음 |
효과 | 스파이 유지 능력 +1 전쟁 명분 '''이데올로기 전쟁''' 군사 정책 카드 '''전격전''': 모든 중기병과 경기병 유닛 생산에 대한 생산력 +50% 경제 정책 카드 '''5개년 계획''' : 캠퍼스와 산업구역의 인접 보너스 +100%. 경제 정책 카드 '''경제동맹''' : 상업 중심지와 항만의 인접 보너스 +100%. 외교 정책 카드 '''포함 외교''': 모든 도시 국가와 국경 개방 협정을 맺음. 턴당 사절 획득을 위한 우호도 점수 +4 |
기존 경제 카드의 2배 효율의 카드들이 해금된다.
외교 정책 카드 '''경찰국가'''(플레이어 영토 내에서 적 스파이의 레벨 -2, 내 모든 도시에서 턴당 충성심 -2)가 있었으나 몰려드는 폭풍에서 삭제되었다.
7.4. 문화 비용 1715
7.4.1. 핵 프로그램(Nuclear Program)
[image] '''핵 프로그램''' | |
뉴멕시코에서 '트리니티'가 폭발한 1945년 7월은 수백 년에 걸친 과학 프로젝트가 절정에 달한 시점이었습니다. 우라늄은 1789년에 독일의 화학자인 마틴 클라프로트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의 이온화 방사성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1898년에는 퀴리 부부가 피치블렌드에서 라듐을 분리했고, 같은 해에는 사무엘 프레스코트가 방사선이 박테리아와 여러 생명체를 파괴한다는 주장을 증명했습니다. 1898년부터 1938년 사이에도 계속해서 발견이 이어졌고 한과 슈트라스만은 마침내 실험에서 원자핵 분열이 일어났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리제 마이트너, 오토 프리시와 닐스 보어는 핵분열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약 2억 볼트로 계산하였고, 이 수치는 1939년 1월에 진행된 프리시의 실험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영향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제조계획)가 시작되었고, 미국은 최초의 '원자' 폭탄 개발국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학의 참혹한 결과로 '리틀보이'라는 조그만 장치를 만들었고, 이 장치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떨어져 12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파괴하였고, 이로 약 75,000명이 살상되었습니다. 당시 도시에 있던 의사의 90%, 간호사의 93%가 폭발로 사망하여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45년 12월에는 방사능 중독으로 인해 75,000명의 생존자가 또 다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에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자 트루먼 미 전 대통령은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을 투하하도록 명령했으며 비슷한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일본은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모두가 '원자 폭탄'을 원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 내내 미국과 구 소련은 MAD(상호확증파괴)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핵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합했고, 같은 시기에는 영미계 회사에서 영국인들에게 폭탄을 선사했으며 중국은 러시아에 이어 1964년에 핵보유국이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이후로 다섯 강대국은 세상에 종말을 고할 수 있는 이 판도라의 상자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리비아, 이란과 북한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선 핵 프로그램에 발을 드렸습니다. | |
인용구 | '''"원자력 힘의 방출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빼고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인류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제가 미리 알았다면, 전 시계 기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핵폭탄 시대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수준이 약해진 것 같다. 물론, 충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니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마틴 에이미스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연구소를 건설. |
효과 | 외교 정책 카드 '''핵무기 첩보''' : 스파이의 기술 강탈 임무가 발각되지 않고 성공했다면 기술 상승 1개를 추가로 얻음 위인 정책 카드 '''노벨상''' : 위대한 과학자 점수 +4. |
7.4.2. 선거 제도(Suffrage)
[image] '''선거 제도''' | |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투표 권한을 가진다는 특이한 개념입니다. 1832년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일어난 일련의 개혁 사건 이전에는 남자 성인 3%에 한해 투표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재산 가치를 특정 개인이 획득했는지에 따라 투표권이 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투표권자의 대부분은 부유층과 남성이었습니다. 1800년대 초를 통틀어 공상가들은 여성, 빈곤층, 이민자와 여러 소수 집단을 위한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해 투쟁했으며 어느 정도의 타협안(1870년 미국 헌법 수정 조항 제15조 등)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투표권은 주로 백인, 중산층과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습니다. 보통 선거제도의 역사는 개혁 운동, 시민 시위와 사설적 비판으로 얼룩졌지만 기장 눈에 띄고 요란했던 노력은 투표권을 얻기 위한 미국과 영국 여성들의 활동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성에게 온전한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몇십 년 후의 일이었지만 스웨덴-핀란드(1718-1772년), 코르시카(1755-1769년), 심지어 뉴저지(1776-1807년)에서는 잠시나마 여성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848년에는 대부분 여성으로 이루어진 폐지론자 단체가 여성의 민주주의 권한을 논의하기 위해 세니커폴스에 모였으며, 이때부터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온전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투표권 획득을 위한 중요하면서도 때로는 폭력이 개입된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결함이 많았던 1832년의 개혁령에 이어 투표권이 정치적 주제로 부상했으며 1867년의 여성 참정권 협회, 그리고 좀 더 공격적인 성향의 여성 사회 정치 연맹이 1903년에 결성되었습니다. 비록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는 1920년에, 영국에서는 1928년에 드디어 여성들이 온전한 투표권을 획득하였고, 뉴질랜드와 핀란드에서는 각각 이미 1893년 및 1906년에 여성이 투표권을 얻어냈습니다. | |
인용구 | '''"왜 여성은 차별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비참한 게릴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성 참정권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빅토리아 우드헐 '''"남성들, 남성 권리, 그리고 그 이상도 아닌, 여성들, 여성 권리, 그리고 그 이하도 아닌.'''" - 수전 B. 앤서니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하수관을 4개 건설. |
효과 | 정부 체제 '''민주주의''' : 군사 1, 경제 3, 외교 2, 와일드카드 2 경제 정책 카드 '''뉴딜 정책''': 3개 이상의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서 주거공간 +4, 쾌적도 +2. '''민주주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와일드카드 정책 카드 '''최상의 시간''' : 고향 영토 및 인근에서 전투하는 모든 유닛의 전투력 +5. '''민주주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최상의 시간''' : 현대/원자 시대 공중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R/F) 경제 정책 카드 '''경제동맹''' : 상업 중심지와 항만의 인접 보너스 +100%(R/F) 경제 정책 카드 '''뉴딜 정책''' : 3개 이상의 특수지구가 있는 도시에서 주거공간 +4, 쾌적도 +2, 금 -8(R/F) 외교 정책 카드 '''민주주의 병기창''' : 동맹인 국가와 연결된 교역로에서 양쪽 도시에 식량 +4, 생산력 +4, 동맹 점수 획득 속도 +25%(R/F) 경제 정책 카드 '''타운 헌장''', '''해군 기반시설''', '''메디나 지구''', '''자유주의''', 외교 정책 카드 '''비셀방켄'''이 도태됨(R/F) |
7.4.3. 전체주의(Totalitarianism)
[image] '''전체주의''' | |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파시즘의 철학가'인 지오반니 젠틸레가 전 세계에 걸친 침체기에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위안적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요지는 시민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경우 안전과 번영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으로, 혹자는 전체주의가 수천 년에 걸쳐 존재해 온 고대의 개념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사라는 재상이 통치했던 진 왕조에서는 '법가'가 지배적인 철학이었습니다. 정치적 활동은 규제되었고 자유 문학은 파괴되었으며 정부에 순응하지 않는 이는 즉결 처형되었고, 플라톤이 구상한 엄격한 체계를 기반으로 한 공화국 체제에는 많은 전체주의 특성이 있었으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도 많은 전체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정치 철학가와 역사학자들이 전체주의라는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전체주의가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등에 대한 주제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전체주의 국가를 구분하는 다섯 가지의 상호 연관적 특징 즉, 1) 모두가 강제적으로 고수해야 하는 공식적인 이데올로기, 2) 계층적으로 조직되어 국가 관료 체제와 연관성을 가지는 단일 정당, 3) 군대 및 대중 매체에 대한 독점적인 통제권, 4) 폭력이 개입된 경찰의 권한, 5) 중앙에서 결정되는 국가 자본주의경제의 향방이 존재한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합니다. 이성을 가진 주체라면 정치적 다원성과 개인의 자유를 자기 의지로 포기한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자유주의에는 모순이 숨어있습니다. 개인 자유에 대한 억제되지 않은 추구는 다른 사람 즉,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됩니다. 또한 다원주의로 정체 상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개인보다는 사회를 강조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이은 경제적 혼란에 지친 다수의 정치 지도자는 전체주의를 홍보하고 몇몇은 권력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1922년), 포르투갈의 안토니오 살라자르(1932년),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1933년)와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1936년)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이후에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아이티, 알바니아, 앙골라, 이라크, 우간다 등지에서 많은 전체주의 옹호자가 정권을 차지했습니다. | |
인용구 | '''"전체주의의 탄력에는 군중과 엘리트 집단만이 매료될 것입니다. 일반인은 선전을 통해 이겨야 합니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종말을 가져온다.'''" - 톰 로빈스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사관 학교를 3개 건설. |
효과 | 정부 체제 '''파시즘''' : 군사 4, 경제 1, 외교 1, 와일드카드 2 군사 정책 카드 '''제 3의 대안''': 각 연구소, 사관 학교, 석탄 발전소, 석유 발전소 및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문화 +2 및 금 +4. '''파시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와일드카드 정책 카드 '''계엄령''': 평소보다 전쟁 피로도 축적 -25%, 주둔군 유닛이 있는 도시는 턴당 충성심 4. '''파시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전격전''' : 현대 이후 시대의 경기병/중기병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R/F) 군사 정책 카드 '''계엄령''' : 전쟁 피로도 축적 -25%, 유닛이 주둔한 도시에서 턴당 충성심 +2(R/F) 경제 정책 카드 '''제3의 대안''' : 연구소, 사관 학교, 발전소에서 금 +4(R/F) 외교 정책 카드 '''포함 외교''' : 모든 도시 국가와 국경 개방 협정을 맺고, 사절 획득을 위한 턴당 우호도 점수 +4(R/F) 군사 정책 카드 '''기동 훈련'''과 '''기사도''', 외교 정책 카드 '''카리스마 리더'''가 도태됨(R/F) |
7.4.4. 계급 투쟁(Class Struggle)
[image] '''계급 투쟁''' | |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의 도입부에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라고 기술했으며, 엥겔스는 원시인들이 천 년 동안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 1888년의 영문판에 '모든 서면 역사'라는 경고문을 추가했습니다. 역사에 대한 두 인물의 견해에 따르면, 문명화된 국민은 상이한 계층 간의 사회 경제적 이해 경쟁으로 인한 긴장 상태 속에서 생활한다고 했습니다. 계급 투쟁이 급진적 변화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는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미하일 바쿠닌과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추구한 노력의 핵심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계급 투쟁'이라는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에는 최소 두 가지가 있으며, 선호되는 각 방식은 경쟁 관계에 있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방식입니다. 한 접근 방식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경쟁 관계의 두 그룹 중 하나 이상이 자신을 의식적으로 이해를 추구하는 '계급'(즉, 계급 의식을 가진)으로 간주하게 되는 정치 운동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됩니다. 나머지 방식에서는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을 착취할 때마다 계급 투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열심히 일할 것을 거부하는 노예, 그리고 노예를 채찍으로 폭행하는 주인, 둘 모두 자신이 계급에 속해 있지 않다고 간주하는 경우엔 계급 투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후자의 계급 투쟁은 산업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산업 자본주의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생산 수단(토지와 자원, 작업장 및 공장, 은행과 학교)을 소유한 통치 계급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지식적 가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영역 반대편에는 부의 '실질적인 창출자'로, 최저의 임금으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는 이들이 존재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 갈등에 기름을 부어 근대 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바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불평등이었습니다. | |
인용구 | '''"계층 간의 싸움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싸움을 거는 계층은 내가 속한 부유한 계층이고, 이 계층이 이기고 있다.'''" - 워런 버핏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로 이어진다.'''" - 칼 마르크스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공장을 3개 건설. |
효과 | 정부 체제 '''공산주의''' : 군사 3, 경제 3, 외교 1, 와일드카드 1 경제 정책 카드 '''공영화''': 국내 교역로에서 생산력 +2, 식량 +4. '''공산주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와일드카드 정책 카드 '''모국 수비''': 플레이어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전투로는 전쟁 피로도가 축적되지 않음, 현대, 원자 및 정보 시대의 지원 유닛 생산시 생산력 +100% '''공산주의 정부에서만 사용 가능''' 군사 정책 카드 '''애국전쟁''': 현대 이후 시대의 지원 유닛 생산시 생산력 +100%(R/F) 군사 정책 카드 '''모국 수비''': 플레이어 영토 내에서 발생하는 전투로는 전쟁 피로도가 축적되지 않음(R/F) 경제 정책 카드 '''5개년 계획''': 캠퍼스와 산업구역의 인접 보너스 +100%(R/F) 경제 정책 카드 '''공영화''': 국내 교역로에서 식량 +4(R/F) |
8. 원자 시대
8.1. 문화 비용 1955
8.1.1. 문화 유산(Cultural heritage)
[image] '''문화 유산''' | |
전 세계에서 '형제애'에 관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 기인하는 각자의 상이한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사가 폭발했습니다. 탈식민지화와 이민은 '민족적 뿌리'에 대한 현시대의 관심사를 위한 배경을 형성했습니다. 잘못 인식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든 아니면 특정 그룹의 독특함을 기념하기 위해서든, '문화 유산'은 선진국에 속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취미가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은 20년의 세월, 그리고 우연치 않게 찾아온 공민권 운동, 북아일랜드의 '문제', 북미 원주민의 평등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 전역의 독립 운동(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 약 30여 개의 새로운 국가가 자치권을 얻었음)을 겪으며 사람들이 이해하게 된 사실은 문화 유산이 공유된 유대감 즉, 민족, 지역, 종교나 일반화된 사고에 의해 결정되는 특정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화 유산은 정체성과 관련된 정치적, 개인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문화 유산과 관련된 물건 중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은 실제의 인공물이었으며 그림, 스케치, 모자이크, 조각품, 사진, 문학 작품, 건물, 기념물과 고고학 유물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암시장을 포함한 문화제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문화재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처분을 규제하는 국내외의 문화제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따라서 특정 그룹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미술품과 공예품(보통 약탈당했거나 오래된 물건)을 본국이나 원주인에게 송환하는 규정도 발전하였습니다. 음악, 의복, 연극, 조리법, 축제, 연휴 및 종교 행렬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전통을 아우르는 무형 유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정통성'을 복원하기 위해 문화 관광 산업이 꽃을 피웠고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문화 명소를 찾아가 정보를 얻고 '문화적 요구'를 충족 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다른' 이국적인 문화 유산을 관찰하는 일도 포함되었습니다. 세계화와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서는 문화유산에 대한 깨달음이 서로 간의 상대적 균형을 잡아 줍니다. | |
인용구 | '''"과거의 역사, 기원과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민족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 마커스 가비 '''"자신의 전통 유산은 우연히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탐구되기를, 공유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죠.'''" - 로비 로버트슨 |
선행 사회 제도 | 보존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테마 보너스를 맞춘 박물관 보유. |
효과 | 사절 +3 자원 '''난파선''' 발견 세계 불가사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문화 유산 관광''' : 걸작 예술품과 유물에서 관광 +100% |
8.2. 문화 비용 2185
8.2.1. 냉전(Cold War)
[image] ''' 냉전 시대''' | |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즉시 '냉전'이 시작되었고, 문명의 두 초강대국 간에 벌어진 경제,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 및 문화적 갈등은 세계 종말의 위협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서구 민주주의 제국의 연합은 히틀러를 굴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만약 히틀러가 지옥을 침공한다면, 나는 하원에서 적어도 악마의 편을 들어서 발언을 하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동부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마지막 결전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사실 두 체제 모두 순수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위협 종식을 위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언싱커블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처칠의 명령으로 영국 합동기획단에서 수립한 작전명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공격 내용을 담았음), 새로 당선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대신 아베릴 헤리먼과 제임스 포레스탈과 같은 자문위원의 권고에 힘입어 모스크바에 대한 강경 노선을 취하거나 적어도 루즈벨트보다는 강경한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46년 2월에 조지 케넌 미대사가 보낸 '장문의 전문'은 미국 '봉쇄' 정책 수립을 위한 지침서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러시아의 확장 성향'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를린 봉쇄, 헝가리 혁명, 중국 내전, 쿠바 미사일 위기와 한국,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의 참혹한 전쟁을 비롯한 끊임없는 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강대국 어느 쪽에서도 최후의 단계를 실행할 의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나라 모두 군수창고에 원자 폭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1949년에 자체적으로 제작한 원자 폭탄을 실험했고, 이에 트루먼은 미국에서 '초강력 폭탄'(수소 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이어 발표하여, 스탈린도 역시 곧바로 같은 방침을 취했습니다. 전 세계는 MAD(상호확증파괴)에 양상에 접어들었으며,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1972년에 중국과 외교 관계를 체결할 때까지 이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에 대한 긴장 완화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소비에트 연방이 분열되어 1991년에 붕괴되기 전까지도 냉전은 '맹위를 떨쳤습니다'. | |
인용구 | '''"발트 해의 슈테틴에서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습니다.'''" - 윈스턴 처칠 '''"냉전은 녹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명적인 열기로 불타고 있습니다.'''" - 리처드 닉슨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신속한 배치, 우주 경쟁 |
영감 조건 | 핵분열 기술을 연구하십시오. |
효과 | 스파이 유지 능력 +1 신앙으로 시민 유닛 '''록밴드''' 구입 가능 군사 정책 카드 '''국제 수역''' : 항공모함 이외의 모든 해상 유닛 생산시 생산력 +100%. 군사 정책 카드 '''2차 공격 능력''' : 턴당 원자 폭탄 유지에 드는 금 -50% 외교 정책 카드 '''봉쇄''' : 도시 국가의 종주국의 정부 체제가 플레이어의 정부 체제와 다른 경우 그 도시 국가에 보내는 각 사절은 2명으로 취급됨 외교 정책 카드 '''암호학''' : 플레이어 영토 내에서 적 스파이의 레벨 -2, 공격 작전시 내 스파이의 레벨 +1 세계 불가사의 '''아문센-스콧 연구 기지''' 건설 가능(R/F) |
8.2.2. 프로 스포츠(Professional Sports)
[image] '''프로 스포츠''' | |
대부분의 인류사를 놓고 볼 때 사람들은 '재미'와 여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여가는 기본적으로 부유한 이의 특권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의식주와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사람들은 항상 스포츠에 참여하고 스포츠를 관람했으며, 특히 팀 스포츠에 열광했지만 이러한 스포츠는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의 경연이었습니다. 물론 유혈이 낭자했던 로마의 전차 경주, 메소아메리카의 구기와 페르시아의 폴로 경기는 예외였죠. 하지만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가 '산업'이 급격하게 확산되었고 사람에게는 선수 간의 경합을 구경하기 위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었고, 또한 노동 계급의 무료한 시간을 달랠 수 있는 프로페셔널 스포츠가 탄생하였습니다. 공립 학교의 스포츠와 영국의 클럽 스포츠는 1660년대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1700년대 중반에는 최초의 '1등급'(세미 프로) 크리켓 팀이 결성되었습니다. 많은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지방의 스포츠도 함께 유입되었으며, 운송 및 통신의 발달로 대학 팀들이 서로 간에 경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결국 표준 규정 마련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고 1848년에는 축구 협회의 플레이 규칙이 캠브리지 규칙에 의해 성문화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런던에서는 1863년에 관중 스포츠 최초의 관리 기간인 축구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1862년에는 노츠카운티 FC에서 몇몇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불하여 세계 최초의 프로 클럽이 되었습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에서 남북전쟁을 막 끝낸 북동부 아메리카의 군중을 사로잡은 스포츠는 바로 야구였습니다. 선수들로부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좋은 동기 부여는 돈이었으므로 초기 야구 팀들은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했으며, 이 중 1869년부터 급여를 지급한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가 최초였습니다. 1871년에는 최초의 프로 야구 리그가 결성되었으며 1900년대 말에는 미국 동부의 대도시 대부분에서 1개 이상의 프로 팀이 있었습니다. 이 팀들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로 디비전이 나뉘었고, 이후로 스포츠에서는 '재미'만이 될 순 없게 되었습니다. | |
인용구 | '''"이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점수는 왜 기록하는가?'''" - 빈스 롬바르디 '''"스포츠는 인성을 길러내지 않습니다. 인성을 드러내죠.'''" - 헤이우드 브룬 |
선행 사회 제도 | 이데올로기 |
후행 사회 제도 | 소셜 미디어 |
영감 조건 | 유흥단지를 2개 건설. |
효과 | 특수지구 유흥단지의 건물 '''경기장''' 건설 가능 특수지구 워터파크의 건물 '''아쿠아틱 센터''' 건설 가능 세계 불가사의 '''마라카낭 경기장''' 건설 가능 경제 정책 카드 '''스포츠 미디어''' : 극장가의 인접 보너스 +100%, 경기장에서 쾌적도 +1. |
8.3. 문화 비용 2415
8.3.1. 신속한 배치(Rapid Deployment)
[image] '''신속한 배치''' | |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촉박한 시간 안에 현장에 신속하게 배치 가능한 부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현지적 특성이 강한 미국 주방위군과 같은 RDF(긴급 배치 부대)와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RDF는 본국의 국경 외부에 투입됩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RDF는 미군 제82공수사단, 제75 레인저연대 또는 영국 왕립 해병대와 같은 정예군으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모든 부대에는 통지 후 18시간 이내에 출동하여 전투 준비를 마쳐야 할 임무가 주어지며, 모든 병사가 적 영토에 '침입'하여 후속 부대를 위해 이착륙장과 해변과 같은 핵심 장소를 점령하고 확보할 수 있는 훈련을 거치게 됩니다. RDF의 역사는 대부분의 정예 부대와 마찬가지로 방대하고 다양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해병대는 표트르 대제의 해군 상륙 부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미 해병대는 원래 1775년 대륙 회의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제1차 바르바리 전쟁, 멕시코-미국 전쟁, 의화단 사건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수십 건의 다국적 임무를 통해 기동성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빠르게 동원하여 국경으로 수송 가능한 국경경찰대, 추격병과 저격병 등의 경보병 부대가 각국의 선호도에 따라 결성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공수부대와 공중 기동 부대도 여기에 추가되었습니다. 냉전 시대와 함께 양 진영은 모두 육해공군의 부대를 통합한 RDF 전투서열을 개발했습니다. 영국의 JRRF(Joint Rapid Reaction Force, 연합 긴급 대응 부대)는 육해공군에서 차출된 여러 특수 부대로 구성되었으며, NATO, 유럽연합이나 국제연합의 지원 하에 군사 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1980년에 자체적인 RDJTF(Rapid Deployment Joint Task Force, 신속전개 통합임무군)를 구축하여 '지역 안정을 유지하고 걸프 지역의 오일이 서구로 유동하는 데 기여'하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2009년에 결성된 집단신속대응군(Collective Rapid Reaction Force)이 유사한 용도로 활용되던 소비에트 VDV(공수부대)를 대부분 대체했습니다. | |
인용구 | '''"지금 거칠게 수행된 괜찮은 계획이 일주일 후에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계획보다 훨씬 좋다.'''" - 조지 S. 패튼 '''"작전 행동은 잊어, 그냥 똑바로 돌격해.'''" - 호레이쇼 넬슨 |
선행 사회 제도 | 냉전 시대 |
후행 사회 제도 | 세계화, 환경주의 |
영감 조건 | 타 대륙에 비행장이나 활주로를 건설. |
효과 | 공항이 건설된 비행장 특수지구를 통해 지상 유닛 공수 가능 군사 정책 카드 '''군사 우선''' : 모든 근접/대기병/원거리 유닛 생산시 생산력 +50%. 군사 정책 카드 '''사후 보고''' : 전투 경험치 획득 +25% 세계 불가사의 '''아문센-스콧 연구 기지''' 건설 가능 |
8.3.2. 우주 경쟁(Space Race)
[image] '''우주 경쟁''' | |
전쟁 이후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생존한 수백 명의 독일 과학자를 모집하거나 설득하거나 심지어는 납치했으며 그 중에서도 나치 로켓 프로그램에 참여한 과학자의 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냉전이 과열되기 시작하면서 우주는 두 강대국의 또 다른 경쟁터가 되었으며 각 국가는 자국의 기술은 물론 정치, 군사, 경제 체제의 우월성까지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먼 도시까지 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독일산 V-2 로켓을 더욱 크게 만들어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광기를 가진 몇몇 공상가가 이러한 탄도 미사일의 좀 더 '효율적'인 활용 방안을 깨달았습니다. 1955년, 두 국가는 각각 4일 간격으로 1957년이나 58년까지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배치하겠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1957년 10월에 스푸트니크 1호를 궤도에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 소비에트 연방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 발 앞서 나가게 되었으며 4개월 후에는 미국의 우주 개발을 주도한 폰 브라운이라는 독일 과학자와 그의 팀이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익스플로러 1호를 주노 1호라는 4단계 합체 우주선에 실어 발사했습니다. 향후 몇 년에 걸쳐 순진무구한 개와 원숭이가 지구 궤도를 향해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소비에트 연방은 1961년 4월에 유리 가가린을 궤도로 쏘아 올렸고, 그는 무사히 지구로 복귀했습니다. 존 글렌은 1962년 2월에 우정 7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여행했으며, 미국은 몇 개월 차이로 다시 한번 경쟁에서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1960년대 말까지 달에 인류를 착륙시키겠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고 다시 한 번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몇 년간은 소비에트와 미국 모두 로켓이 중간에 폭발하는 등의 화려한 실패를 겪었지만 1968년 아폴로 8호의 발사와 함께 경쟁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는 달 주변의 궤도를 인간이 탐사한 최초의 임무였습니다. 1969년 7월 20일에는 미국인 우주비행사인 닐 암스트롱이 '한 인간으로서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는 말을 남겼고, 1975년 7월에는 어느 정도 관계가 완화된 러시아와 미국이 최초의 합동 임무인 아폴로-소유스 도킹을 통해 우주 개발 전쟁에 종식을 고했습니다. | |
인용구 | '''"우리는 10년 이내에 달에도 가고, 그 밖에 다른 일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쉬운 과제여서가 아니라, 어려운 과제여서입니다.'''" - 존 F. 케네디 '''"미국항공우주국은 우주에서 필기할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들였지. 반면에 소련 우주인들은 연필을 가져갔다네.'''" - 윌 샤보 |
선행 사회 제도 | 냉전 시대 |
후행 사회 제도 | 세계화, 소셜 미디어 |
영감 조건 | 우주 공항을 건설. |
효과 | 군사 정책 카드 '''종합 우주 보안 기구''' : 사관 학교 또는 항구가 있는 도시에서 우주 경쟁 프로젝트 건설시 생산력 +15% 경제 정책 카드 '''위성 방송''' : 걸작 음악이 산출하는 관광 +200% 외교 정책 카드 '''음악 검열''': 다른 세력의 록밴드가 플레이어 영토에 들어오지 못함, 인구 10 이상의 모든 도시에서 쾌적도 -1. |
9. 정보화 시대
9.1. 문화 비용 2880
9.1.1. 세계화(Globalization)
[image] '''세계화''' | |
20세기에는 세계화의 충격이 현지, 국가, 지역, 세계로 이어지는 동질성이라는 물결의 확산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통합된 경제, 문화, 언어, 국가와 문명이라는 논리적 결론으로 제시됩니다. 정보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한 새로운 가상 관계는 문화적 엔트로피로 이어졌습니다. 국제 산업화로 대량 생산 및 규격화된 제품을 전 세계의 모든 시장에 배치할 수 있었고, 관세 감소와 자유무역지역 구축, 국가 차원의 자본통제 제거와 새로운 보조금을 얻을 수 있는 경로를 통해 다각화된 다국적 기업이 탄생했습니다. 지적재산법(저작권 및 특허 규제)에 대한 초국가적인 인식으로 일부 현지의 다양성, 전통과 개성 대신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예술 형식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중국을 강제로 개방하고(아편 전쟁), 미국이 일본을 협박하여 항구를 서양 무역의 창구로 개방하도록 만들면서 1840년대는 세계화와 국제 경제 확장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고도로 전문화된 별개의 농업 생산이 통합되면서 최초의 '세계 경제'가 탄생했습니다. 프랑스 와인, 호주산 맥주, 인도산 차, 일본식 쌀, 남미의 고추, 아프리카의 향신료 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공장, 철도, 전보, 개틀링 기관총과 증기선 등의 산업 기술은 유사한 규칙과 규제를 국가 간에 확산시키는 촉진제가 되었습니다. 비록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대중 매체와 광고의 촉수가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 너머까지 미치기 시작하면서 세계화는 상승가도를 재개하며 문화의 수출 역학이 모든 마을까지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세계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계화의 네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여기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동등한 위치의 투자 파트너가 되고 두 국가 간의 1인당 소득 격차가 급격하게 감소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단조로울 수 있는 멋진 신세계입니다. | |
인용구 | '''"세계화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고 한다.'''" - 코피 아난 '''"언젠가는 경계도 국경도 국기도 국가도 사라질 것이며, 우리의 마음만이 유일한 여권이 되리.'''" - 카를로스 산타나 |
선행 사회 제도 | 신속한 배치, 우주 경쟁 |
후행 사회 제도 | 벤처 정치, 분배된 주권, 최적화 정책, 근미래 통치 |
영감 조건 | 공항을 2곳 건설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재배지 시설에서 금 +2 군사 정책 카드 '''전략적 공군''': 모든 공중 유닛과 항공모함 생산시 생산력 +50%. 경제 정책 카드 '''전자상거래''': 각 국제 교역로에서 생산력 +2, 금 +5. 외교 정책 카드 '''국제 항공 우주국''' :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 당 과학 +5% |
9.1.2. 소셜 미디어(Social Media)
[image] '''소셜 미디어''' | |
눈치 채지 못한 분들을 위해 알려 드리자면, 소셜 미디어는 인류 문명에 대해 알아야 하는 모든 정보 혹은 적어도 인터넷 사용자가 알고 있는 어느 정도의 정보는 담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21세기에 유용함을 발휘할지 아니면 저주가 될지 여부는 예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정확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Six Degrees, weblogs, My Space 이전의 소셜 미디어는 시카고의 워드 크리스텐슨과 랜디 수에스가 1978년 2월에 선보인 최초의 다이얼 접속식 BBS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온라인 미팅 공간은 사용자가 파일을 다운로드하거나 공적 메시지를 게시할 수 있는 중앙 서버를 통해 통신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코드 조각을 개별적으로 생성해냈습니다. 이러한 텍스트 전용 서비스는 입소문을 통해 절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FidoNet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가 생겨나 이러한 전자 게시판 시스템을 전세계적인 메시지 보드로 연결했습니다. 한편 CompuServe와 같은 상업 서비스는 공적 도메인으로 확장되어 각종 주제에 대한 토론 포럼을 제공했으며 '이메일'이라는 최첨단 서비스가 탄생했습니다. 모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수천 명이 X세대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누구나 최초의 소셜 미디어 포털(SMP)이라고 인정하는 SixDegrees.com이 출시되었고, 스팸의 확산으로 인해 2001년까지만 운영이 유지되었습니다. SixDegrees의 가입자는 갱신 가능한 개인 프로필을 생성하고 다른 사용자를 '친구'로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2000년경에는 약 1억 명이 인터넷에 액세스할 수 있었으며 온갖 부류의 사용자가 채팅방을 활용하여 토론, 데이트와 공감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LinkedIn(2002년)과 MySpace(2003년)의 출시에 이어 처음으로 소셜 미디어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 소셜 미디어의 '커넥티드' 환경이 구축된 시기는 마크 저커버그의 Facebook이 출시된 2004년과 잭 도시가 Twitter를 출시한 2006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소셜 미디어와 수십 가지의 다른 서비스(Flickr, Tumblr, Habbo, Sina Weibo 등)에서는 거의 모든 텍스트, 동영상, 오디오나 이미지 파일을 각종 장치와 모바일 장치에서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도 멋진 모습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 |
인용구 | '''"내 모든 중대한 헛소리 중 어느 것을 먼저 들려줄까?'''" - 제인 오스틴 '''"집중의 방해로부터 방해받아 방해되었도다.'''" - T. S. 엘리엇 |
선행 사회 제도 | 우주 경쟁, 프로 스포츠 |
후행 사회 제도 | ? |
영감 조건 | 전기 통신 기술을 연구. |
효과 | 총독 타이틀 +1 경제 정책 카드 '''온라인 커뮤니티''' : 플레이어의 교역로가 있는 문명을 상대로 관광 산출량 +50% 외교 정책 카드 '''집단 행동주의''' : 플레이어가 종주국인 도시 국가 당 문화 +5% 외교 정책 카드 '''홍보국''' : 정착한 총독은 보유한 진급 수만큼 턴당 충성심 +1. |
9.1.3. 환경주의(Environmentalism)
[image] '''환경주의''' | |
환경주의에서는 자연환경(현재 인간이 개발하지 않은 지역)이 그저 개척하지 않은 미개발 천연자원의 보고가 아닌 있는 그대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 문화에서 환경주의는 자연계를 개발의 대상이 아닌 보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중대한 태도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현대 산업주의 때문에 발생한 심각한 건강 위험뿐만 아니라 산업혁명 중 지나치게 자원을 소비한 결과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자연과 인류를 더 협조적이거나 통합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화는 역사적으로 많았지만, 이번 경우엔 특히 현대 산업화 이후의 태도를 지칭합니다. 레이첼 칼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많은 대중에게 환경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살충제가 가진 해로운 효과를 문서로 기록해 산업 발전 비용에 대한 많은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로 다양한 분야와 활동에서 자연에서 인간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정책과 입장에 대한 다방면(전부는 아님)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침묵의 봄"이 출판된 이후 일부 지역에 행해진 일부 조치에 의해 오염이 줄어들었다는 환경주의자의 찬사가 있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태양의 빛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대의 후손을 위한 집을 준비하겠습니다."''' - 아르고나우티카,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 |
선행 사회 제도 | 문화 유산, 신속한 배치 |
후행 사회 제도 | 근미래 통치 |
영감 조건 | 태양광 발전 단지를 2곳 건설하십시오. |
효과 | 제국 전체의 관광이 +25% 증가합니다. |
9.2. 문화 비용 3000
9.2.1. 벤처 정치(Venture Politics)
[image] '''벤처 정치''' | |
법인격 개념의 법적 발전은 정부 체제 안에서 강조된 '인간'이 자연인에서 법인으로 변화하고, 거대 법인에서 민간 업체로 크기가 조정되며 미래에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와해된 시장의 힘과 교차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법인적인 면에서 두드러지게 운영을 시작할 때, 국가는 일부 기업 정치의 형태로 가정될 수 있습니다.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국가가 국가의 '개인들' 사이의 계약이라는 측면에서 집행만을 행하며 최대한 자유주의자가 된다고 가정됩니다. 법인에서 일하는 직원의 주요 윤리적 책임이 최대 주주 가치를 제공할 것을 가정하면, 또한 개인 간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강한 시장성이 존재하게 됩니다. 기업 정치에서는 시장의 힘과 시장 내에서 유리한 조건을 획득할 능력으로 표현되는 권력의 면에서 정체성이 형성됩니다. 인정되고 가득 찬 시장과 사회 내부에서 기회로 새로운 정체성이 마땅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지와 같은 이러한 매우 모호한 개념은 중대한 문화적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한 생물학적 인간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까? 가족이 기업일 수 있습니까? 한 생물학적 개인이 다수의, 중복된, 상호 경쟁하는 인물들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과 다른 많은 질문은 수 세기 동안 존재해온 통치의 근본 원칙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요구됩니다. 이에 대한 답은 당황스러울지도 모릅니다. | |
'''설명''' | |
인용구 | '''"그의 위에, 그의 몸과 정신 위에는 국왕이 있습니다."''' - 존 스튜어트 밀 |
선행 사회 제도 | 세계화, 소셜 미디어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우라늄 광산을 건설하십시오. |
효과 | 정부 체제 '''기업 자유지상주의''': 군사 2, 경제 1, 외교 1, 와일드카드 5 |
9.2.2. 분배된 주권(Distributed Sovereignty)
[image] '''분배된 주권''' | |
계몽주의 이후 정치적 사고에 대한 서양의 지배적인 의식은 통치권 (정부의 권력)이 국민들의 의지에서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신은 초기 인터넷 시대 문화를 형성했으며, (전체 인류 인구보다 상대적으로 적거나 동일한) 참여자 공동체에 의한 합의적 의사 결정은 문제 해결 및 사회 구조를 정의했습니다. 따라서 이 국민 주권설의 디지털 버전은 현대 인터넷의 개념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공동체는 지리적인 제약 없이 모두를 위해, 모두에 대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치 이론가들을 지리학적으로 정의된 독립체의 반대 개념으로 사전 동의된 정치적 통일체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이끌었습니다. 한 개인이 한 장소에 살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물리적 장소보다 공동체의 규칙에 더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분권 체계에서 공동체의 참여자들은 지리학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 있지만, 공통의 가상 공동체를 운영하고 거기에서 정체성을 끌어냅니다. 또한 이러한 공동체는 공동체의 이익에 대한 공유 및 투표를 위한 기술 발전에 강한 관심을 둔다고 여겨집니다.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이미 '베스트' 콘텐츠를 강조하는 수단으로서 '좋아요', '공유', '추천' 등의 방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사용자 사회적 자본을 공동체의 이익과 관련된 소재를 생산하는 사용자의 능력에 제한합니다. 유일한 예외는 고양이 사진으로, 이는 곧 법입니다. 계몽주의 시대 정치 이론가들은 종종 압제적인 다수의 권력에 대해 우려했고, 이러한 우려는 분권형 정부 내에서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브리게이딩, 조작된 시민운동, 봇 프로그램, 페이크 뉴스, 알맹이가 없는 포스팅, 메타 유머 등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주님의 날이 판결의 골짜기 안에서 가까우므로 많고 많은 무리가 판결의 골짜기에 있습니다."''' - 요엘서 3:14 |
선행 사회 제도 | 세계화, 소셜 미디어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록밴드를 소유하십시오. |
효과 | 정부 체제 '''디지털 민주주의''': 군사 1, 경제 1, 외교 1, 와일드카드 5 |
9.2.3. 최적화 정책(Optimization Imperative)
[image] '''최적화 정책''' | |
테크노크라시는 특정 문제의 세부적인 기술적 전문가들에 의한 정부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전문가는 직면한 문제, 그리고 다양한 기술적 시정이 어떻게 사회 전반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위적 테크노크라시에서는 정부의 전문가가 비인간 요소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서는 전문 AI가 주어진 영역에서 비인간 전문가로 활동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하지만 혹자는 고도로 전문화된 하위 분야의 비인간 전문가를 예로 들기 위해 월드컵 점쟁이 문어를 언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테크노크라시는 대부분 다른 실력주의 이론을 따르며,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대한 국가의 전적인 통제 권한을 가정합니다. 테크노크라시는 최적의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특성을 추구하고 정당과 파벌의 갈등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함이 있는 실제의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모든 정치 체계가 이렇게 고귀한 목표를 어느 정도까지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20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AI는 다양한 영역의 행동을 분석하는 데 주기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비자 및 경제 행위는 가장 잦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분야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치적 선호도와 법 집행 분야에서도 AI가 연구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AI가 더욱 정교함을 더해갈수록 사화 연구에 대한 AI 적용 패턴 역시 그 범위와 심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테크노크라트는 인간 테크노크라트에 비해 공정성과 포괄성이라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AI는 이해 충돌이 없거나 제한된 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릴 것입니다. 따라서 더욱 광범위한 인류를 위한 더욱 공정한 결과가 보장됩니다. 컴퓨팅 능력이 발전할수록 AI 테크노크라트는 더욱 많은 요인과 더욱 광범위한 결과를 고려하여 성능을 개선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향상된 결과를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에서는 AI의 윤리 코드에 적용된 잘못된 전제, 윤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생성하는 냉정한 정책(예: 식인 행위로 세계 기아를 해결), 책임의 결여... 등과 같이 AI가 인간 행동을 유도하는 문제를 다루고 이 영역의 몇몇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인위적 테크노크라시의 잠재적인 문제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합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우리는 엄청난 통찰력, 뛰어난 이해력이 있으며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이 움직이는, 그 무엇과 비교해도 인류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인 로봇을 양심의 가책 없이 순수 기계로 만드는 모든 기계 천재를 찾습니다."''' - 에드가 앨런 포 |
선행 사회 제도 | 세계화, 소셜 미디어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영감 조건 | 로봇공학 기술을 연구하십시오. |
효과 | 정부 체제 '''인위적 테크노크라시''': 군사 1, 경제 2, 외교 1, 와일드카드 5 |
9.3. 문화 비용 3100
9.3.1. 근미래 통치(Near Future Governance)
[image] '''근미래 통치''' | |
여러 방면에서 인류는 여전히 공화국의 플라톤이 제기한 의문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국가가 최고인가? 천년에 걸친 가치와 도덕성의 변화는 국가 문제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참여하는 방법 등 정치 권력의 기원에 대한 신념을 크게 바꾸는 결과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신념을 통해 알아낸 통치 방식의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있으리라고 믿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근미래의 시민 통치 방식은 사람들이 시민 생활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에 정치 철학자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을 추가하는 방식을 법률화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정부를 구성하게끔 만드는 가상의 다음 단계를 나타냅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정의는 정의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정의의 행정에 대한 인류의 유대이며 정치적 사회에서 질서의 원칙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
선행 사회 제도 | 환경주의, 세계화 |
후행 사회 제도 | ? |
영감 조건 | 9개의 고유 슬롯을 가진 정부를 채택 |
효과 | 사절 +3 |
10. 미래 시대
10.1. 문화 비용 3200
10.1.1. 강제 대이동(Exodus Imperative)
[image] '''강제 대이동''' | |
많은 이들이 우주 탐사를 꽤 매력적인 주제로 여기고 있지만 인간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과정을 공통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은 보편적인 믿음보다는 공상과학 비유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강제 대이동이 필요한 경우 이러한 믿음이 긴요할 것입니다. 넓게 보면 이 생각은 인간이 외계로 나가 다른 행성에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경우 잠재력을 달성하는 데 실패하고 멸종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다양하고 끔찍한 해석이 제안되고 있으며, 점점 부족해지는 자원을 놓고 발생하는 분쟁과 지구 전체의 재앙에 따른 파괴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지구 밖으로 나간다는 건 분명히 흥미로운 생각이며, 사변 소설의 학도에게는 연구해 볼 만한 여러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지구에 남는 사람들과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인간이 외계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식민주의자 집단 간의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러한 아이디어는 분명히 흥미로우며 다른 분야에서도 상세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오, 가장 사랑하는 아득한 옛날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 러다이스 키플링 |
효과 | 와일드카드 정책 '''우주 관광''': 다른 플레이어의 관광이 플레이어 문명 대비 20% 감소 와일드카드 정책 '''항공우주 도금업체''': 우주 공항이 있는 도시가 턴당 알루미늄 +3 및 전력 +3 |
10.1.2. 문화 패권(Cultural Hegemony)
[image] '''문화 패권''' | |
특정 문화는 곳곳에 있어 주변의 다른 문화에 중력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주변 문화를 직접적으로 대체하거나 주변 문화 내에 상당 부분 통합되어 형태를 이루는 방식을 취합니다. 예를 들어 로마는 지중해의 문화 패권국이었습니다. 중국은 더 오랜 시간 동안 거대 아시아 지역에 패권적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영어는 현시대의 패권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문화적 가치, 언어, 의식과 관계를 삽시간에 덮어쓸 수 있는 문화 패권은 영향을 받은 문화에 의해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TV는 20세기 후반이 진행되는 동안 엄청난 양의 미국 엔터테인먼트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아, 내 사랑이여, 과거 후회의 오늘과 미래의 두려움을 비우는 컵을 채우고, 내일은? 왜? 내일은 어제의 7천 년으로 나 자신을 찾으리라.''' - 에드워드 피츠제랄드 |
효과 | 와일드카드 정책 '''비국가 행위자''': 스파이 유닛이 진급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 가능 와일드카드 정책 '''한류'''[7] 한국 문명 한정 혹은 한국어판 한정이 아니다. 영어 원문부터 ''''Hallyu''''이다! 문명 위키 ‘한류’는 한류 열풍처럼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뜻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이곤 한다. |
10.1.3. 스마트파워 정책(Smart Power Doctrine)
[image] '''스마트파워 정책''' | |
핵확산 시대에서의 총력전은 위험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낙진과 방사성 자갈만 남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스마트파워'라는 개념이 제안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염두에 둔 제한적인 군사적 시위와 비군사적 행동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비록 아예 생소한 관행은 아니지만 종말론적 무기의 존재가 구현과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에 변화를 요구하는 건 분명합니다. 국정 운영 기술, 보편적이거나 특이한 외교, 적 인구에 대한 직접적인 원조와 의미 있는 힘의 과시('충격과 공포')로 이루어진 조합이 스마트파워 접근 방식을 정의합니다. 지지자들은 여러 상이한 접근 방식이 비선형적으로 결합되어 입력한 합보다 향상된 결과를 출력하는 '전투력 승수'를 언급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것이 실패하면 앞서 언급한 정치적 목표에 대한 사후 소급 적용 변화 역시 승리를 선언하는 데 유용할 수 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곧 때가 올 것이며 힘을 기반으로 한 기관의 무능함과 어리석음, 불편함을 모두가 알게 될 때 사라질 것입니다"''' - 레프 톨스토이 |
효과 | 와일드카드 정책 '''외교 수도''': 턴당 외교적 환심 +4 와일드카드 정책 '''전 세계 연합체''': 우호적 영토에 있는 유닛의 공격력 +7 |
10.1.4. 정보 전쟁(Information Warfare)
[image] '''정보 전쟁''' | |
심지어는 고대의 군사 이론가조차 전투에 나서기에 앞서 적의 감각을 왜곡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했습니다. 낡고 뻔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적 국민의 태도에 영향을 미쳐 적국 내에서의 전쟁 지원을 감축할 수 있는 더욱 정교한 수단들이 여기서부터 파생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소셜 미디어를 조작하거나 분쟁 사안에 대한 대항서사를 작성하여 퍼뜨리거나 대안 사실을 제공하는 등의 사례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대상 국가가 출처인 것으로 위장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대를 실제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는 대상 국가 내에서는 정말 치명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수백의 전투에서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 손자 '''"적이 어디서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면 모든 곳을 대비해야 하므로 모든 곳이 약점입니다."''' 손자 |
효과 | 와일드카드 정책 '''대중 선동''': 세계 의회에서 플레이어의 외교 승리 점수를 축소하면 소비한 외교적 환심의 50%를 돌려받음. 턴당 외교적 환심 +1 와일드카드 정책 '''통합 공격 병참 지원''': 적 영토에서 턴을 시작하는 경우 이동력 +1, 거대 전투 로봇 생산시 생산력 +50% |
10.1.5. 지구 온난화 완화(Global Warming Mitigation)
[image] '''지구 온난화 완화''' | |
지질학적 기록에 비교한 현시대의 기후학 연구는 전 세계의 평균 온도 상승에 따른 지구의 심각한 변화를 시사하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수십 년 동안 이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는 이러한 경고가 정책에 반영되는 수준이 비교적 미미합니다. 지구 온난화 완화는 기술적 수단을 통해 세계 기후 변화에 따른 최악의 효과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기에서 탄소를 제거하여 온난화 속도를 낮추는 것이 이러한 프로젝트의 한 예입니다. 숲을 다시 만들고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 온난화 완화를 더욱 광범위한 규모로 구현함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하는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며, 이러한 요소는 비용, 그리고 문제 및 해결책 요구에 대한 공공 인식 부족에 어느 정도 기인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경고한 동일한 전문가들은 대중이 해결책을 부르짖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 |
'''설명''' | |
인용구 | '''"이 악한을 돌의 뾰족한 모서리에 파괴할 수 없는 아다만타인 속박으로 구속하라."''' - 아이스킬로스 |
효과 | 외교 승리 점수 +1, 사절 +3. 탄소 재포집 프로젝트를 잠금 해제합니다. 완료 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소폭 감소하며, 외교적 환심 +30을 얻습니다. |
10.2. 문화 비용 3500
10.2.1. 미래의 사회 제도(Future Civic)
[image] '''미래의 사회제도''' | |
문화의 진전은 천천히 펼쳐가는 이야기와 같고, 문화를 정의하는 가치는 시간이 흐르며 진화하고 변화합니다. 철학자들은 아직까지도 고대로부터 내려온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토론합니다. 좋은 삶이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도덕적으로 생활합니까? 우리의 권리와 자유는 무엇입니까?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기술의 진화는 협상해야 할 새로운 도덕적 모호함을 발생시키고, 선과 악 모두를 만들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합니다. 미래는 과거 시대 지혜의 도움을 받아 미래에 맞게 문제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미래의 문화가 무엇을 가져올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미래의 사회 제도'는 우리를 공통된 인간성으로 묶는 유사점과 함께 인류를 조화롭게 하는 개개인의 차이점을 기념하기를 기원합니다. | |
인용구 | "과거를 이용해 미래를 계획할 수는 없소." -에드먼드 버크 "전 미래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금세 미래가 되니까요." -알버트 아인슈타인 |
선행 사회 제도 | 미래 시대 사회 제도 |
후행 사회 제도 | 없음 |
효과 | 총독 타이틀 +1, 외교적 환심 +50 여러 번 연구할 수 있으며, 연구를 완료할 때마다 추가 점수를 얻음 |
[1] 패치로 개신교에서 제도명 변경[2] 정확히는 타일 3개에 시설이 개발된 상태여야 한다. 타일 3개를 개발했으나 하나 이상 약탈되었다면 영감을 얻지 못한다.[3] 희곡 뜻대로 하세요 2막 7장 중에서.[4] 대학은 과학 기술 교육에서 가능[5] 흥망성쇠부터는 군사동맹만, 그것도 2단계만이 시야가 공유된다.[6] 패치로 개신교에서 제도명 변경[7] 한국 문명 한정 혹은 한국어판 한정이 아니다. 영어 원문부터 ''''Hallyu''''이다! 문명 위키 ‘한류’는 한류 열풍처럼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뜻하는 고유명사로도 쓰이곤 한다.